시묘와 최석의 청렴

2024.05.16 15:29:35

김동환

청주시 흥덕구 세무과 주무관

유독(留犢). 직역하면 송아지를 남겨두었다는 뜻으로 재물을 탐하지 않고 고결하고 청렴한 관리를 일컫는 말이다. 고사의 주인공은 중국 후한 말에 관리를 지냈던 시묘라는 인물로, 역사서 '삼국지'에 주석을 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는 송나라 역사가 배송지가 '위략(魏略)'에서 그를 대표적인 청백리의 예시로 소개했을 정도로 청렴함이 남달랐다고 한다.

시묘는 어려서부터 고결하여 탐욕이 없었고 악행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수령으로서 당대에도 바른 행실로 명성이 자자했다. 어느 정도냐면 그가 수령으로 처음 부임했을 땐 허름한 수레에 누런 암소 한 마리만을 타고 갔을 정도였다. 이때 그가 타고 온 암소는 1년 정도 지나서 송아지 한 마리를 낳게 되었는데, 그는 이후 수령으로서의 임기를 마칠 때 송아지를 남겨 두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이에 아전들이 의아해하며 송아지를 남겨두는 이유를 묻자 그는 "내가 여기 올 때에 이 송아지는 없었네. 송아지는 회남 땅에서 낳은 것이기 때문이지"라며 송아지 받기를 한사코 거절하였다. 물론 당시 주변 사람들은 시묘의 행동에 새끼가 어미를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며 조금 너무했다고도 여겼지만 이러한 일화가 널리 알려짐에 따라 그의 고결한 성품이 주목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일화가 있는데, 고려 충렬왕 때의 관리였던 최석의 일화이다. 그는 청렴한 성품으로 선정을 베풀다가 승평부(지금의 전라도 순천)의 수령직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 고을에는 수령이 임기를 마칠 때 수령에게 말 8마리를 헌납하는 관례가 있었다.

최석은 이를 폐습이라 생각하여 개경에 도착하여 도중에 낳은 망아지 1마리까지 합해 9마리까지 고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보냈다. 그의 결단으로 고을에는 그때까지 내려오던 말을 헌납하는 관례는 없어지게 되었고 고을 사람들은 그의 청렴한 뜻을 기리고자 공덕비를 세우고 팔마비(八馬碑)라 이름 붙였다.

시묘와 최석의 일화는 우리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손수 챙겨주려는 것을 끝까지 거절한다는 점에서 굳이 그래야하나 싶을 정도로 고지식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농경 사회였던 당시 소는 농사일에 꼭 필요한 동물이었으며, 말은 이동 수단, 전투용으로도 널리 사용되었기에 누군가에게는 생계와도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귀한 동물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청빈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재산권을 사적으로 오용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재산권을 기부하는 헌신적인 마음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업인만큼 공무원의 의무를 준수하며 항상 모범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SNS 등 소통 창구와 청탁금지법과 같은 법령 체계가 발달함에 따라 공무원의 의무 준수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청렴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공무원 조직은 물론이고 국가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그 파장이 엄청나다.

따라서 우리는 시묘와 최석의 마음가짐으로 공직 생활을 하면서 발생하는 이윤에 뜻을 두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정을 베푸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로 청렴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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