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몽선습'이 괴산에서 지어진 이유

2010.03.16 19:40:01

조혁연 대기자

조선시대 때 학동들이 서당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천자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배웠던 것이 '동몽선습'이다. 동몽선습은 한자 '아이 동'(童), '어두울 몽'(蒙), '먼저 선'(先), '익힐 습'(習) 자를 쓰고 있다. 의역을 하면 '사리에 어두운 아이를 먼저 가르친다' 정도가 된다. 따라서 굳이 교재 눈높이를 말한다면 지금의 초등학교 고학년 교과서 정도로 볼 수 있다.

그 저자가 우리고장 괴산 출신 박세무(朴世茂·1487~1544) 선생이다. 그는 조선 중종 때 인물로 본관은 함안, 호는 소요당이다. 직필, 직언을 많이 했기 때문에 주로 외직을 전전했다. 이때의 외직은 지방근무를 말한다. 그러나 박세무 집안은 괴산지역의 대단한 명문가여서 고조 박습은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그리고 아버지 박중험은 정종의 외손자 사위, 그리고 아들 박소립은 예조판서를 역임했다. 이밖에 박지겸은 그의 손자로 괴산읍 검승리의 애한정을 건립했다.

책은 크게 경부(經部)와 사부(史部)로 구성돼 있다. 이중 경부에서는 오륜(五倫)을, 사부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와 중국 역사를 사실과 사론(史論)으로 나눠 다루고 있다. 이중 경부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 중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천자문과 동몽선습은 같은 아동 학습교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적지 않는 차이가 있다. 먼저 천자문은 국산이 아닌, 이른바 수입 교재다.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 때 '주흥사'(周興嗣)라는 사람이 처음 저술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6세기 무렵의 삼국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비해 동몽선습은 박세무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순수 국산 교과서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천자문이 아동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한 용도라면, 동몽선습은 도덕 등 사유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박세무는 집안 손자들을 손수 가르치기 위해 동몽선습을 직접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몽선습은 교재로서의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그 쓰임새가 집안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동몽선습은 어휘 사용에 있어 되도록이면 쉬운 한자를 선택했다. 뿐만 아니라 문장도 가급적 평이하게 구성하려 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제자와 사림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다보니 1759년 영조 때 발간된 증보판은 영조 임금이 직접 '서문'을 쓰기도 했다. 지금의 국정 교과서가 된 셈이다.

그러나 동몽선습은 일제 강점기 때는 그 사용이 금지됐다. 앞서 동몽선습은 경부과 사부로 구성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중 사부 안에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매우 자긍심 있게 서술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을 단군조선 때부터라고 기술하고 있고, 또 조선의 개국과 문화적 융성함을 강조했다. 이 부분을 못 마땅히 여긴 일제는 이른바 '서당 교육령'을 공포, 동몽선습이 서당교재로 사용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현재 괴산읍 검증리 애한정 앞에는 동몽선습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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