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한가위는 오는가…

2010.09.19 19:46:52

편집자주

"남들은 즐거운 추석이 될지 모르지만 올해는 추석이고, 차례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명절인 추석이 돌아왔지만 태풍 '곤파스'와 '말로'의 영향으로 충북도내 일부 농가들이 애지중지 키웠던 한해 농사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면서, 생계에 막대한 지장이 예상되고 있다.이로 인해 피해 농가들은 명절로 들뜬 사회적 분위기가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올해는 특히 봄 냉해로 인해 과수나무가 얼어 죽거나 제때 꽃을 피우지 못해 농사 시작부터 애를 태우기 시작 하더니 여느 해 보다 잦은 비로 농가들이 밤잠을 설치며 걱정 속에 농사를 지어왔다.

이때만 해도 정성을 다해 보살피면 좋은 결실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수확기에 접어든 이달 초 두 차례의 태풍이 할퀴고 지나가면서 이 모든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현재 농가들은 낙과된 과일이라도 팔아 생계에 보태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시름하는 과수 농가를 찾아 현재 모습을 담아봤다.

태풍 피해로 복숭아 수확 절반 '뚝'

감곡면 해돋이 작목반 이성규 씨가 꽃눈동해와 뒤늦게 찾아온 태풍으로 낙과해 빈 봉투만 남은 복숭아 가지를 가르키며 하소연하고 있다.

동해·태풍 피해로 수확은 절반으로 '뚝'

올해는 그야말로 최악의 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기온으로 동해피해를 입은 음성군 감곡면 복숭아 농가들은 설상가상으로 추석명절을 맞아 출하량이 가장 많을 시기에 태풍 곤파스, 말로와 잦은 비로 인해 낙과도 많고 당도도 크게 떨어져 판매실적이 저조해 추석을 맞는 농가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농가마다 편차는 조금씩 있지만 한 그루당 400~500개 정도 달린다. 예전 같으면 4.5㎏ 한 상자 기준으로 20~30상자 정도 수확했는데, 올해는 예년 수준에 비해 절반정도 밖에 출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감곡면 해돋이 작목반 이성규 씨는 "올해 달린 대부분 복숭아가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이는 올 초 동해와 꽃눈 피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꽃눈 동행 피해"라고 재차 말했다. 나무는 안 죽었는데, 꽃눈이 죽었다는 소리다.

다시 말해 나무는 살아 있지만 열매가 열리기 위한 꽃눈이 피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수확도 덜 되고 기형 복숭아가 많이 생겨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과수가 죽지 않아 동해 피해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이 씨에 따르면 수확량은 작년에 비해 50% 수준으로 떨어 졌지만 가격이 조금 높아져서 금액으로는 40% 정도 줄었다.

또 감곡면에서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8년생 복숭아 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5년생 과수까지 수확하는데 8년생이면 한창 품질 좋은 복숭아를 수확할 시기인데 동해·꽃눈피해로 올해 농사를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올해는 감곡 복숭아 농가 대부분이 작황이 안 좋다고 한다. 그중 한 두 농가는 천만다행으로 제철 제값을 받고 복숭아를 출하하고 있다. 다행인 부분이다.

이곳 복숭아는 전국에서 최고의 품질을 인정 받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뒤늦게 찾아온 태풍 곤파스와 말로 여기에 잦은 폭우 등으로 당도가 현저히 떨어져 구매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

특히 감곡면 해돋이 작목반은 항상 당도를 측정해 납품하는데, 지금껏 6브릭스가 나온 적이 없었다고 한다. 보통 10브릭스 이상 나와야 출하하는데, 올해는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설상가상으로 복숭아 농가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한 과수 농가는 과수 전체가 동해피해를 입어 올해 복숭아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 4년은 수확을 볼 수 없게 됐다.

당장 생계가 어려워진 이 농가는 재해 보상을 받았지만 겨우 200만원 안팎이다. 어쩔 수 없이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동해피해를 입은 농가에게 해주는 대출이 있지만 이마저도 소용없다. 대출 용도가 농사에만 쓰여야 되는데, 복숭아 농사만 짓던 사람이 당장 다른 농사로 돌려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동해로 베어버린 복숭아 농장에는 4년 후부터 수확할 묘목을 심어 놨기 때문에 이 곳에 다른 농사를 지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음성 / 남기중기자 nkjlog@hanmail.net

냉해로 나무죽고 태풍에 벼쓰러져

잦은 비와 태풍에 쓰러진 벼를 일으켜세우고 있는 충주시 안성면의 박명식 씨 모습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다가 왔지만 과수 농가를 비롯, 상당수 농민들이 시름에 빠져 한숨소리가 커져있다.

지난 겨울 이상 냉해로 과수나무가 얼어 죽더니, 잦은 비에다 태풍으로 작황마저 나빠 40~50%의 손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냉해로 복숭아 나무가 얼어 죽어 뽑아버렸는데, 이번엔 태풍에 벼마저 쓰러져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 합니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며칠 앞 둔 지난 16일 오후 충주시 앙성면에서 만난 한 농업인은 대뜸 한숨부터 내쉬며 이렇게 털어 놓았다.

벼농사와 복숭아 재배로 대학생 자녀와 함께 고향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던 박명식(49,충주시 앙성면 마련리 연동)씨는 이번 추석명절이 달갑지 않다.

주 농사인 복숭아 나무 350그루가 지난겨울 냉해로 모두 얼어 죽어 뽑아 버리고 옥수수를 대체작물로 심었지만 한여름 복숭아 판매로 4천만~5천만원을 올리던 소득이 겨우 1천여만원으로 줄어 무려 3천~4천만원의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박씨는 "앙성이 복숭아 재배단지로 유명해 복숭아 재배 전업농을 꿈꾸며 농협에서 수천만원을 빌려 소독차량이며 트랙터 등 농기계를 구입했는데, 지난 겨울 복숭아 나무가 얼어죽어 뽑아 버렸으니 다시 묘목을 심어 수확하기까지 5년동안은 아무 소득이 없다고 봐야한다"며 "그동안 영농비며 생활비, 자녀 학비 등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고 답답한 심경을 얘기했다.

박씨는 업친데 덮친 꼴로 지난 '곤파스'와 '말로' 태풍으로 2만6천400㎡의 논에 심어진 벼가 절반이나 쓰러졌으나 일손이 부족한데다 맥이 풀려 일으켜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해 그냥 썩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비가 그쳐 햇볕이라도 오래 들면 물기가 걷혀 썩지 않고 알곡이 영글어 다소 나마 손실을 덜 볼 수 있으나 9월 들어 거의 매일같이 비가 쏟아져 의욕 마저 잃고 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한다고 하지만 올해는 해도 너무하는 것 같아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8~9월에 비가 내린 날이 30일이 넘으니 농사가 잘 될 리가 있겠어요. 농민들 가슴만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거지요."

박 씨는 올 한해 아이들 학비며 3천만원에 달하는 농협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하다.

그래서 수년째 부어온 적금을 깨 군제대후 2학기 복학한 대학생 아들(23) 등록금과 중학3생(16) 학비를 대고 당장 급한 영농자금과 생활비를 쓰고 있다.

마침 이웃에서 심란한 마음을 달래러온 한 농부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박씨는 "이런 농촌실정도 모르고 정부는 지난겨울 냉해 피해 보상금으로 나무 1그루당 600원꼴로 150만원을 보상했다"며 "3.3㎡당 1만5천원은 돼야하는데 탁상에 앉아 생색만 냈다"고 비판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박씨 부인(50)의 속은 더 타들어 간다.

추석이라고 조상들께 올릴 차례음식도 마련해야 하고 친척들이 찾아올 것에 대비해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하나 심란한 마음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추석 차례음식을 장만하려고해도 20만원은 족히 들텐데 올해는 한푼이 아쉬워 걱정이 앞선다"고 한숨이다.

박씨는 "요즘 농촌은 젊은 일손이 없어 농기계로 농사를 짓다보니 각 농가마다 농기계 구입비로 농협에 진 빚이 3천~5천만원이나 돼 올연말 이를 상환하려면 큰 걱정"이라고 농촌실정을 설명했다. 박씨는 "고향에서 한 30년 농사를 지었지만 한번 이런 낭패를 당하면 살길이 막막하다"며 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충주 / 김주철기자

집중호우로 대다수 작물 출하 물거품

지난 11일 갑자기 몰아닥친 집중호우로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 제방이 유실돼 비닐하우스와 농경지가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

추석을 열흘 앞두고 있던 지난 11일 갑자기 몰아닥친 집중호우는 뒤늦은 여름에 찾아왔던 불청객인 태풍 곤파스와 말로의 위력보다 더 강했다.

특히 청원군 옥산면의 경우 이날 140mm이상의 장대비가 쏟아지며 제방이 터지고 도로가 유실되는 것을 넘어 엽채류 시설하우스 농가와 느타리버섯 재배 농가의 피땀 어린 농산물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렸다.

더욱이 올해는 이상기온에 잦은 비로 작황이 부진해 그나마 남은 작물을 추석을 앞두고 출하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날 집중호우로 제방이 유실되며 느타리버섯 비닐하우스 2동과 3천여평의 밭에 심었던 무와 들깨 등을 모두 잃은 옥산면의 김모씨는 "태풍때도 멀쩡하던 하우스와 밭이 한 순간에 물바다로 변해 버려 추석을 앞두고 막막하기만 하다"며 "농작물 피해도 피해지만 어떻게 복구를 해야 할지도 답이 안 나와 한숨만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함께 옥산면 환희리와 호죽리의 호박과 방울토마토, 신선초 등 엽채류 재배 시설하우스들도 물에 잠겼다가 빠져 대다수의 작물을 상품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 피해를 입은 시설하우스 농장주인 이모씨는 "일대 대부분의 비닐하우스가 집중호우로 물이 차올랐다가 다시 빠져 아직은 피해에 대한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사실상 상품 출하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농경지 1ha가 침수된 것을 비롯해 도로가 유실되고 낙석피해를 입는 등 민족 최대의 명절을 앞둔 농심은 한숨뿐이다.

그나마 기반시설은 응급복구를 통해 어느 정도 복구를 진행한 상태이나 일손이 부족해 쓰러진 벼는 아예 일으켜 세울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형편이다.

벼의 절반 가까이가 쓰러지는 피해를 입은 장 모씨는 "일으켜 세우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고 다만 앞으로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며 "물에 잠겨 낱알이 썩지 않도록 배수에 좀 더 신경 쓰고 햇볕이 오래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원/ 인진연기자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