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는 왜 아나키스트가 됐나

"독립운동에 대한 주체적 선변 결과" 새로운 해석
충북대 박걸순 교수 논문

2011.10.03 17:28:03

박걸순 교수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사진)가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가 된 것은 이른바 독립운동에 대한 주체적 선변(善變)이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쓰임새가 많지 않은 '선변'이라는 단어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떤 내용이 과거보다 좋은 방향으로 변한 것을 일컫는다.

충북대 박걸순(사학과·사진) 교수가 최근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 38집에 '신채호의 아나키즘 수용과 동방피압박민족연대론'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단재 신채호

단재는 1925년경부터 무정부주의를 신봉하기 시작, 1927년 신간회(新幹會)의 발기인과 무정부주의 동방동맹(東方同盟)에 가입하는 등 1920년대 후반부터 무정부적인 색채를 짙게 드러냈다.

특히 1928년부터는 무정부주의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 그해 5월 위조 위체(환어음)를 찾기위해 대만 기륭우편국에 들렸다가 체포돼 결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옥사했다.

이와 관련, 국내 학계에는 '단재가 민족주의를 위해 무정부주의를 수단으로 했다'는 설과 '무정부주의를 최고 가치로 보고 민족주의를 수단으로 했다'는 설이 존재해 왔다.

반면 신용하 교수는 단재의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적 독립사상으로 보면서도, 그가 무정부주의자가 된 것에 대해서는 '뜻밖의', '이해하기 어려운', '애석한 일' 등의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나아가 일부 사가들 사이에는 단재의 일부 저술이 무정부주의 사상에 의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철저한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도 존재해 왔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단재의 무정부주의 사상은 선험한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법론에 대한 주체적 선변의 결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수필 '浪客의 신년만필'과 '朝鮮의 志士' 등에 등장하는 단재의 글을 소개했다.

단재는 전자의 글에서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으나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으니 이는 노예의 특색'이라고 질타했다. 이는 사상 자체를 논한 것보다 조선에 도움이 되는 주의와 사상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후자의 글에서는 '주의의 선변은 身은 변하되 法은 불변하고, 色은 변하되 骨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단재가 변해도 될 것으로 말한 身과 色은 무정부주의 사상과 운동이며, 불변해야 할 것으로 강조한 法과 骨은 민족주의에 기초한 독립운동과 정신을 지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단재를 "조선의 크로포트킨(러시아 출신의 무정부주의자)이 되어 독립을 추구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동방피압박민족의 식민지·半식민지 모순을 타파하여 동양 평화를 이루고자 했던 동방의 혁명가였다"고 평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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