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묵언(默言) 중

2013.08.07 17:36:41

신종석

충북중앙도서관 영양사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묵언중 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묵언정진으로 도를 구하는 스님들이 계시고 구원의 길을 향해 침묵으로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수도원의 수사와 수녀님들이 계신다.

그러나 또 다른 침묵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경건하게 때로는 숙연하게 또는 진지하게 고개를 숙이고 묵언을 한다. 묵언을 하는 곳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버스 안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밥을 먹으면서도 묵언이다. 친구와 마주 앉아서도 입 밖으로 말소리가 세어 나오지 않는다. 수행자의 경지에 이른 모습들이다. 전지전능하신 그 분은 묵언하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엄지하나만을 요구 하신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분의 능력을 믿고 엄지만 까닥이면 바로 앞으로 데려다 주시고 모르는 것이 있어 답답할 때도 척척 알려 주신다. 그리운 사람을 보여 주시고 목소리를 들려주시기도 한다. 미운 사람에게는 마음 놓고 욕을 해도 언제나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그 분은 그 욕설 까지도 다 받아 주신다. 그러하니 사람들은 점점 말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묵언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옛날에는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든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묵언수행에 동참하고 있다.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묵언에 동참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세상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으나 침묵의 저 너머 세상은 점점 흉폭 해지고 각박하며 메말라가고 있다. 사람들의 눈빛은 차가워 졌으며 마음의 문은 닫혀 버렸다. 그들이 묵언 수행을 할 때는 항상 주문처럼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나도 묵언 수행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순탄한 삶에 검은 그림자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암담했다. 땅끝마을 해남에 자리 잡고 있는 미황사라는 절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참선수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했고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첫날부터 우리는 7박 8일 동안 묵언을 하며 참선을 했다. 밖으로만 열려있던 마음을 안으로 불러들여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보고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던 나의 무지를 깨달은 귀한 시간 이었다. "나만 왜 이렇게 힘든가·" 라는 물음의 답을 얻은 시간이기도 했다. 묵언을 하면서 신기하게도 내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면의 소리도 들리고 함께 묵언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알겠고 자연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소리들도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입을 다무니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체험을 했다.

그러나 지금 스마트폰을 사이에 두고 묵언수행에 전념 하는 사람들은 귀가 닫혔다. 마음도 닫았다. 그리고 오로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들의 묵언은 소통을 거부 하는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막힌 것을 찾아내어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얼굴을 맞대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것이 자신을 해하는 것임을 모르고 점점 중독 되어가는 그들의 묵언이 걱정스럽다.

이웃집에서 부부 싸움을 하는가보다. 문을 열어놓고 사는 여름이라 조그마한 소리도 아래 위로 들릴 수밖에 없다. 서로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목소리를 한참을 높이더니 잠잠하다.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여 타협점을 찾은 것인지 아니면 어느 한쪽이 무조건 항복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싸움은 끝났고 다시 조용해졌다. 이렇게 사람 사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아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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