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품어라!

2014.03.02 14:31:25

신종석

충북중앙도서관 영양사

속살을 다 보이고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 삐죽삐죽 작고 여린 생명들이 고개를 내민다. 자세히 보아야만 볼 수 있다. 그냥 지나치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낙엽을 머리에 이고 잔설 속에서 고개를 내민 녀석은 앉은부채다. 화경이 포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 중인 스님 모습 같기도 하다.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 숨기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흉물스럽고 기분 나쁜 모습이기도 하다. '앉은부채'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식물은 땅이 녹기도 전에 언 땅을 비집고 눈밭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식물들이 꽃을 피우기 전에 먼저 꽃을 피워 겨울잠에서 깨어난 파리종류들을 이용해 수정한다고 한다. 또한, 독성물질을 품고 있어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로 삼고 있지만, 겨우내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주렸던 동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상비약 같은 존재라고 한다. 겨울잠을 자거나 활동량이 많지 않아 장의 활동이 원할하지 못해 딱딱하게 굳은 변과 꼬인 장을 풀어 주는 역할을 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동물들은 '앉은부채'를 뜯어먹어 그동안 적채된 분비물을 쏟아내야만 봄에 나오는 신선한 먹이를 먹고 소화할 수 있단다. 그러나 가끔 욕심이 너무 많은 짐승은 양껏 뜯어먹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앉은부채' 뿐 아니라 잔설 속에 모습을 드러낸 '노란 복수초' 또한 병아리처럼 어여쁘다. 그러나 그 또한 독을 품고 있다고 한다. 독을 품고 있는 녀석들은 그뿐 아니라, '미치광이풀', '천남성', '투구꽃', '박새풀' 등 대부분이 자신을 지키기는 수단으로 독을 품고 있다. '박새풀'은 겨울을 보낸 멧돼지가 보이는 대로 먹어치우는 식물이기도 하다. 박새풀독은 멧돼지 몸에 오랫동안 축적된 기생충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식물들이 새순이 나오는 봄에는 독성이 더 강하다. 이유는 곤충이나 동물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독을 품는다. 그러나 영리한 곤충이나 동물들은 그 독을 이용해 자신이 살 궁리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렇다고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독을 포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저 허허로운 겨울에는 모든 것이 잠시 정지를 하고 무조건 견디고 기다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동물이든 식물이든 잠시도 쉬지 않았다는 증거를 보고야 말았다. 추위를 견디고 세찬 바람을 맞으며 꼬물꼬물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독을 품었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던 동물들은 새싹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독을 이용해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봄의 향연이 시작되는 삼월의 생태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애잔하기도 하다. 앙증맞은 꽃을 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동물에게 살점을 뜯긴 식물을 보며 슬프기도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혹독한 겨울을 보낸 모두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이렇게 자연은 서로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며 공존하고 있다.

따뜻한 곳에서 배부르게 먹으며 평안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떤 독을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봄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독이 때로는 남을 살릴 수 있는 독이 되기도 하지만 누구든지 욕심을 부린다면 그 독으로 인하여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그동안 원하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움츠리고 겨울을 보낸 사람들 엄동설한에 온몸이 얼어붙고 세찬 칼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휘청거리는 나약한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독을 한 가지씩 품으라고 말하고 싶다. 독을 품고 달려든다면 반드시 살아갈 길이 보이고 활력을 얻을 것이며 상생의 길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 어디에 눈을 두어도 새로운 생명이 독을 품고 죽기 살기로 온몸으로 땅을 들어 올리고 있다. 장엄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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