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신비화와 인간미에 대한 단상

2014.04.14 13:42:12

백경미

충북여성발전센터 연구개발팀장

프랑스 혁명기, 격동의 시기인 만큼 구구절절한 삶의 이야기도 많았지만, 내게는 특히 감동적이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던 블랑제(G.Boulanger)의 삶에 대해 소개해본다. 블랑제는 제3공화정 당시 우익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인데 그의 선택과 죽음이 특이하다. 1889년에 일으킨 우익들의 반란은 거의 성공에 이르렀고 우익세력들은 그를 원수직에 모시려 했다. 그러나 블랑제에게는 중병을 앓고 있는 연인이 있었고, 그는 원수가 되는 길과 연인의 곁에 남는 길 중에 선택을 해야 했다. 아이러니컬하게 그는 죽음이 가까운 연인의 곁에 남기를 선언해 버렸고 공화정은 다시 지속되었다.

블랑제는 결국 연인이 죽자 6개월 후에 그녀의 묘비 앞에서 권총자살을 했다. 만약 블랑제가 필부였다면 한토막 신파극밖에 안되었겠지만 그가 프랑스 역사상 남긴 영향을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힘든 요소가 많아진다. 이를테면 그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모르지만, 최고의 권력이 보장되는 기회, 아니 그보다 평생의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와 맞바꿀 수 있었는지.

언뜻 TV나 책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과연 우리랑 같은 인간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꼭 위인이나 성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오를 수 없는 지위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뭔가 우리랑 신체구조 내지 두뇌의 형태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흔히 갖는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 산 언저리에서 용변을 보시고 계셨는데 선생님의 어린 제자들이 그를 보고 혼비백산했다는 얘기가 있다. 어린 제자들에게는 높으신 선생님이 자기들처럼 변을 본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러한 '신비화 작업'은 어릴수록 강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권력이 자주 다다를 수 없는 능력이나 경지, 극단적이지만 예를 들어 솔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는 등의 신비화 작업을 통해 권력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다름을 강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사 속의 위인들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그들도 지극히 평범한 우리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이 형성한 위인, 또는 롤모델의 이미지나 행동이 나와 다른 차원과 경지에 있다면 어차피 오를 수 없는데 노력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사과를 먹는 일상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위대한 뉴턴도 알고 보면 증권투자로 돈 좀 벌려다가 몽땅 날리기도 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블랑제라는 인물이 필자의 뇌리를 스친 것은 그의 선택과 삶이 우리가 언제나 행할 수 있는 것이었고 위인도 결국은 똑같은 인간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변 보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진실에 한 발 더 접근한 어린이들처럼 필자도 참된 인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껏 먹은 나이가 무색하게도 필자는 솔직히 이 '신비화 작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른'을 어려워하는 습성 탓도 있지만 지연, 혈연, 학연, 연고가 전혀 없는 곳에서 지래 겁을 먹고 움츠려드는 것 같다. 그런 필자에게 당신들도 같은 차원의 사람이라는 인간미를 보여주신 분들이 계신다. 아주 작은 결실도 크게 칭찬해주시고, 손수 차를 타서 건네주시기도 하고, 부끄러운 기고글에 따뜻한 멘트를 건네주시기도 하는 인간적인 롤모델들이 위축된 필자에게 큰 힘이 되고 있음을 고백하며 필자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힘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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