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해피 데이(Oh, Happy Day)

2014.04.15 14:02:13

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아침 조회가 있는 날이면 으레 전교생이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였지만 오와 열을 맞추어 행진해야 했고, 그때마다 선생님들께서는 질서를 강조하며 여기저기서 고함을 질러대셨다.

그땐 왜 그렇게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길기만 했었는지…. 참을성 부족한 우리들은 너나없이 온몸 비틀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럭저럭 말씀이 하강 곡선을 그린다싶어, '그래 용케도 잘 참아주었다' 하고 스스로에게 박수라도 쳐줄라치면, '에헴, 끝으로!' 라며 다시 목청을 끌어올리시곤 했다. '사서삼경'으로 무장된 교장 선생님은 아침부터 진을 다 빼놓으셨다. 우린 우리대로 그 넓은 운동장에 인질처럼 잡혀 있다는 답답함이 싫어서 대개의 경우 얼른 행진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날 나는 왠지 기분이 들떠 있었다. 정서가 좀 불안정했다고나 할까. 나는 행진을 하며 옆에 선 녀석에게 우스갯소리를 던지고, 다리를 걸었다. 녀석이 응수해 오자 금방 대오가 흐트러졌다. 교감선생님께서 굉음과 함께 마이크 볼륨을 올리며 비수를 날리셨다. 선생님 몇 분이 우르르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린 서로서로 주의를 환기시키며 그런 대로 다시 대열을 갖추었다. 더 이상의 성가신 일 없이 행진은 끝나고 모두들 교실로 들어갔다.

해방감에 젖은 반 아이들이 왁자지껄 자유를 구가하고 있을 무렵, 얼굴이 벌개진 담임께서 들어오시더니 타고난 음성이 높은음이라도 되는 듯 고함부터 질러대셨다.

"아까 행진하며 장난친 녀석들…, 다 알고 있으니 당장 나왓!"

행진 때 내 주변에 섰던 녀석들이 거 보란 듯 나와 또 다른 녀석에게 시선을 꽂았다. 꼼짝없이 둘은 담임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려운 나머지 벌써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뭉그적대다가 결국 앞으로 나갔다.

"응, 너지? 또 네 녀석이지? 내 그럴 줄 알았어!"

분노로 떨리는 담임의 목소리가 나 아닌 다른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뺨을 올려붙이는 소리가, '대한민국 짜짜아짜짜!'로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니, 잘못한 건 녀석이 아니고 나인데, 장난을 시작한 건 바로 나였는데…?' 녀석은 얼굴을 감싸 쥐고 말없이 얻어터지고만 있었다.

담임은 녀석이 워낙 공부하기 싫어하고, 툭하면 서울로 도망갔다 오기 일쑤인데다, 원체 싸움질 잘하는 악동인지라 으레 오늘의 사단도 그 녀석이 저질렀으려니 하고 단정했던 것이다. 녀석은 또 녀석대로 혼쭐나고 얻어터지는데 이골이 난지라 오늘 것도 자신의 잘못으로 지레 자인(自認)해 버린 것이다. 한 마디 변명도 없이 얻어터지고 있는 녀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위기를 벗어난 사실이 다행스럽기도 하여 나는 그저 비겁한(?)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 귀퉁이에서는 슬몃슬몃 웃음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보다 재수 없는 놈이, 내 바로 곁에서, 내가 저지른 죗값을 터무니없이 치르고 있다는 통쾌함에 나는…, 나는 교실이 떠나가도록 웃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크악 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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