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맞은 음성군 공무원

2014.04.17 17:57:46

이화영

음성민중연대 운영위원

'황무지'의 시인 토머스 S 엘리엇은 땅속에 잠든 뿌리를 봄비가 깨우므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그는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기' 때문에 4월에 비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하다고 노래했다.

잔인한 4월은 공무원들도 비켜가지 않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인한 가금류 이동 제한은 이달이면 해제가 되지만 공무원들이 겪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언제쯤이면 치유가 될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지난 1월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전국 486개 농가에서 닭과 오리 등 1천200만 마리가 살처분 됐다. 충북에선 108개 농가 180만9천마리가 살처분 되면서 공무원 3512명이 동원됐다.

충북지역에서도 피해가 컸던 음성에선 57농가 84만809마리가 살처분 됐고, 공무원 1천93명이 투입됐다. 또 방역초소 근무에 1천561명이 동원됐고, 2개월이 넘도록 24시간 동안 AI 상황실을 지켜야 했다.

음성군 공무원들은 살처분과 방역초소 근무에 동원되면서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한 공무원은 살처분 작업을 하고 나서 고열로 3일간 입원했으며, 다른 공무원은 방역초소 근무에 동원됐다가 빙판에 넘어지면서 턱뼈가 부서져 수술을 받고 2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지금도 고통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집에 어린 아이가 있거나 연로하신 부모를 봉양하는 공무원은 2차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처분을 해야 했다.

신체적 고통보다 심각한 문제는 트라우마다. 공무원들은 살처분에 처음 투입됐을 때 오리들을 향해 '미안해 미안해'하며 작업하다가 몇 차례 반복되면서 '이놈들을 죽여야 내가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잔인해져 갔고 생활로도 이어졌다. 또 동물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업무에 집중을 못 하거나 악몽을 꾸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음성군에 대한 충북도 종합 감사가 오는 21일부터 30일까지 10일간 진행될 예정이어서 직원들은 휴일도 잊은 채 감사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감사 시기를 늦추거나 기간을 줄이는 등 조정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인 건 충북도에서 자치사무와 자체예산이 투입되는 업무를 자체 감사 기능에 과감히 위임하면서 부담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이 위험을 무릎 쓰고 살처분 현장으로 향하고 24시간 동안 방역초소와 상황실 근무에 임하는 것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명예와 긍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잔인한 4월은 이번이 마지막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