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2014.04.28 13:47:41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일찍이 이런 분노와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이 오십을 넘기고 보니 인간이 살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로 알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큰 재해나 횡액을 당해보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때나 청년시절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무게를 직간접적으로 많이 겪어 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른 넷 되던 해, 오랫동안 기다리던 첫아이를 낳자마자 잃을 뻔 했던 일은 큰 시련이었다. 서울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일주일간 갓난애의 생사 여부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인생의 경험을 전제로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아이의 상태는 그 후 서너 살이 될 때까지도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아야 했다.

옛날 중국에 두자춘이란 부잣집 아들이 있었다. 재산을 탕진하고 어느 노인에게 도움을 받은 후 그는 노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인이 만들고자 하는 불사약의 인체실험용으로 자신의 몸을 바친다. 그런데 불로장생의 선약을 만드는 최적의 몸이 되기 위해서는 희비애락 등의 인간 감정을 일체 버려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약을 만들기 위해 산으로 올랐다. 어느 무서운 장군이 나타나 그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아내를 매로 치고 불에 넣거나 심지어 아내가 찢겨져 죽어가는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어도 두자춘은 입을 떼지 않았다. 장군은 세상에 둘 수 없는 비정한 인간이라 하여 두자춘을 죽인다. 그래도 두자춘은 지옥에 떨어져 별별 고문을 당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보다 못한 염라대왕이 그를 벙어리 여자로 환생을 시켜 어느 진사의 아내로 살게 만들었다. 아들을 낳고 살다 진사는 아내의 냉정함에 질려 아들을 거꾸로 들고 맷돌에 메어 쳤다. 그 피가 두자춘의 얼굴에 튀자 두자춘은 그때서야 비로소 "으아!"하는 비명을 질렀다. 지옥에서 독사지옥, 바늘지옥, 불솥지옥을 겪어도 입술 한번 움직이지 않던 그가 아들의 고통 앞에서는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순간 두자춘은 불사약 제조에 실패하고 원래의 노인 앞에 돌아와 있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이겨냈지만, 마지막 고비인 자식에 대한 마음만큼은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세월호의 아픔을 겪고 있는 유족들께는 어떤 천하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을 잃어본 경험 없이 멀쩡히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감히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겠는가. 특히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 앞에 그저 죄스런 심정뿐이다. 온 국민이 넋을 잃고 있다. 우리는 마른 울음 삼키며 매일 고통스런 하루를 맞이하며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정녕 꿈이었으면 좋겠다. 깨어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요즘 어떤 격언이나 명구를 끌어다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 해도 도무지 위안이 되질 않던 터에 그나마 마음을 추슬러 볼 수 있었던 한 줄의 문장이다. 철학자 존 호머 밀스의 말이다.

'삶이란 우리의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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