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과녁에 꽂힌 화살 - 궁시장 양태현

2014.05.01 15:05:41

ⓒ사진=홍대기
천하의 불량배 자로가 공자를 만났을 때 공자는 자로를 가르쳐 바른 길로 인도하려 배움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자로는 공부가 무사로 사는 데 무슨 소용이냐며 따져 묻는다.

"화살을 만드는 소나무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바르게 자라고, 그것을 잘라서 화살을 만들면 잘도 꽂힙니다. 그런데 골치 아픈 그놈의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저자거리의 건달 자로에게 공자는 다시 말한다.

"그 화살 역시 뒤에 깃털을 꽂으면 더 힘 있게 날아갈 것이고, 앞에 화살촉을 박으면 더 깊이 꽂힐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움의 힘이다!"

전통화살을 만드는 궁시장 양태현 장인(충북도 무형문화제 제16호)을 만나러 가는 길.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주택가를 걷는 동안 자로와 공자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불교의 전유경을 비롯해서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 활시위를 떠난 화살 등 여러 비유에서도 화살은 살아있다.

ⓒ사진=홍대기
화살의 기원은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촉을 붙이지 않은 목제 화살부터 나무, 각, 돌, 청동, 철로 촉을 붙인 화살까지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유용성을 높이며 전해져 왔다. 화살은 활로 쏘는 화살과 총이나 포에 넣고 쏘는 화살, 로켓화살 등으로 분류되며, 사정거리와 재료, 용도에 따라 세분화 된다. 화살의 재료로 공자의 이야기에는 소나무가 등장했지만, 우리의 국궁(각궁)은 주로 대나무 죽시(竹矢)를 쓴다.

양태현 장인은 16세 때 이모부의 권유로 화살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장인의 공방에는 장인이 만든 수십 여종의 다양한 화살들이 있었다. 우리의 화살 편전이 등장하는 영화 '최종병기 활'에도 장인의 화살이 쓰였다.

편전(片箭)은 여덟 치(24cm) 정도로 짧지만 대나무를 반으로 쪼갠 통아에 넣고 쏘기 때문에 사정거리가 길어 500보 밖의 적까지 맞추며 먼 곳에서도 갑옷을 뚫을 수 있어 적들은 관통력과 살상력이 뛰어난 편전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제작기술을 모방할 것을 우려해 함길도 지역의 사격을 비밀리에 하도록 하며 만주족이나 왜인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올 7월30일 개봉 예정인 '명랑-회오리바다'에 쓰이는 화살과 고종황제의 활터에 건립될 박물관에 전시될 전통화살 만드는 일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장인이 만드는 화살은 조선시대 이성계에 의해 전투용으로 사용된 '유엽전'과 끝이 뭉툭해서 사람이나 동물을 죽지 않고 기절시키는 '무촉전', 금속 촉 대신 솜방망이를 달아 적진에 불을 지를 때 쓰이는 '화전', 가는 대를 사용하여 적진에 편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세전', 깃은 좁고 촉으로 조선시대 무과시험이나 교습에 사용된 '박두(樸頭)', 깃은 매우 넓고 쇠 촉을 달아 사냥용으로 쓰였던 '노시(盧矢)'와 바람구멍을 뚫어 소리로 시작을 알리던 '효시', 짧은 화살인 '편전'을 비롯한 각종 사냥용 화살이다.

ⓒ사진=홍대기
화살의 재료는 대나무 중에서도 해풍을 맞고 자란 신우대(조릿대)를 주로 쓴다. 폭이 좁은 '신우대'를 불에 구워 실처럼 푼 쇠심줄을 감고 어교(민어 부레로 만든 풀)로 붙이면 빠른 속도와 충격에도 부러지지 않고 철판을 뚫을 정도로 강하다.

길이는 최소 두자 네치(72.6cm)에서 두자 여덟치(84.6cm)인데, 주종을 이루는 것은 90cm이다. 대나무 마디가 3개인 신우대를 골라 그늘에서 말린 뒤 부재비라는 불통에서 표면을 굽는다. 열처리를 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단단해지고 탄력이 더해지는데 손으로 튕기면 특유의 소리가 난다.

"이 소리가 안 나면 감을 몰라요. 다른 나라보다 좋은 우리 대나무가 있잖아요. 열을 가하면 신우대가 고무처럼 부드럽고 누글누글 해져요. 겉은 단단하고 속은 물러서 다루기도 쉬워 천연소재로는 이 이상 좋은 재료가 없어요. 굵기는 지름 약 8mm정도, 저기 글씨가 있잖아요. 중량은 7돈(26.25g)에서 7돈반(28.02g)이 표시되어 있어요. 145m나 쏘잖아요? 가벼우면 멀리가고 무거우면 가까운 데에 떨어지니까, 중량을 정확하게 하지요. 주문하면 화살을 쏠 사람의 신체치수와 걸음걸이, 체력 등을 생각해서 만들어요. 그래야 제대로 된 화살이 나오죠. 꿩의 털을 사용하는 화살의 깃도 왼손을 쓰는지, 오른손을 쓰는지에 따라 달라지고 화살 끝의 색은 주문에 따라 그 사람의 고유색을 표시하기도 하지요."

재료인 대나무와 화살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장인은 박달나무 졸대를 쉬지 않고 움직여 굽은 곳은 바로잡으며 말을 이었다.

ⓒ사진=홍대기
"활 쏘는 사람은 심성도 좋아야 해요. 이건 무기잖아요. 사람을 겨누면 안 되니 예의범절이 중요하지요. 우리나라 전통 놀이문화는 50여 가지가 되지만 왕실에서도 궁술을 중시했고 활쏘기는 활을 쏘는 예의, 복장, 활 쏘는 법도 등이 엄격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전국에 국궁장이 생기고 활 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격에 맞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필요해요."

장인의 마음처럼 국궁이 생활이며 정신 수양의 길이기도 했던 전통을 이어 후손에게 제대로 전해지길 바란다.

/글·사진=홍대기(사진작가)·이옥주(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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