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 차린 눈물의 밥상

2014.05.11 13:42:32

윤상원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사단법인 한국발명교육학회 회장

진도(珍島)의 서남쪽 끝자락에 한적한 포구(浦口)가 있다. 팽목항([彭木港)이다. 평상시에는 한적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한 곳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사고 관련 가족, 취재진, 자원봉사자, 수색·구조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주차장에는 수백 대의 차량으로 북적거렸다. 하늘에는 헬기 소리가 요란했다. 주변 여기저기에는 '꼭 살아 돌아오라' '보고 싶다 얘들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쓴 노란 리본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방파제 한쪽에서는 목탁소리와 함께 무사생환(無事生還)을 기원하는 기도 소리가 또렷했다. 선착장에는 묵묵히 노란색 꽃다발을 바다에 던지는 한 아빠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옆에 있던 엄마는 아들이 좋아하는 우유를 바닷물에 뿌렸다. 하얀 우유는 파도에 휩쓸려 뿌옇게 퍼져갔다. 이어 절규하는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며칠째 부둣가에는 덩그러니 밥상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밥상 위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피자·초콜릿·치킨·콜라·사이다·과일·과자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바다에 누워있는 어린 생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의 간절함이 담겨 있는 특별한 밥상이자 제단(祭壇)이었다. 매일 갓 지은 밥과 국을 다시 밥상에 올리며, 아이들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밥상 위에는 양말도 놓여있었다. 추위에 떨고 있을 아이들을 위한 엄마의 배려였다. 눈물과 사랑의 밥상이었다. 한 엄마는 숟가락으로 밥을 가득 떠 바다에 던졌다. "내 새끼 무척이나 배고플 거야?" "얼마나 춥니?" 밥상 앞에서 엄마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저 검푸른 바다에 묻힌 자식을 그리워하며 오래도록 밥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엄마는 아직도 수없이 후회하고 있었다. "보내지 말 것을…" "떠나던 날,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해줄 것을…" 엄마는 마음 둘 곳도, 기댈 곳도 없이 황망함으로 가득 차 보였다. 엄마는 간절히 무릎을 끊고 희망을 기도하다가 어느새 가슴은 숯처럼 새까맣게 타버렸다. 다른 엄마가 또 오열했다. "내 새끼 비록 형체를 못 알아봐도 좋으니, 제발 내 손으로 땅에 묻게 해 달라고…"

그저 살아오기만 바랐던 엄마의 간절한 기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원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엄마는 정부의 무능한 구조 대처와 무책임한 해운사의 뻔뻔함에 치를 떨었다. 승객들이 탄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선장과 선원들은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정치인들의 어이없는 행보는 엄마의 눈물을 고갈시켜 버렸다. 이 나라에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 이민을 결심한 가족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기적은 여태 일어나지 않고 있다. 매일 뉴스를 볼 때마다 사망자 숫자만 자꾸 늘고 있다. 생존 소식보다는 사망자만 늘어나면서 엄마는 점점 지쳐만 간다. 지금도 찬 바다는 아이들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팽목항 부둣가에는 어린 자식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눈물의 밥상이 여전히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연 어느 누가 이런 밥상을 차려 놓은 가족의 심정을 알아줄까? 얼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아이들의 싸늘한 주검 앞에 선 엄마의 마음을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엄마는 거친 바다를 향해 아이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본다. "내 새끼 부디 돌아만 와다오" 팽목항 앞바다의 파도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아무런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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