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의 의미

2014.05.12 18:23:21

박만성

청주시농업기술센터 식량작물담당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쌀이 부족해 굶는 일이 없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쌀이 턱없이 모자랐다. 외화 부족으로 부족한 쌀을 수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쌀을 자급하는 일은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였다. 정부는 쌀의 소비를 줄여보고자 혼식 및 밀가루 분식을 장려했고 심지어는 학교에서 도시락을 검사하기도 했다. 당시 유행했던 '보릿고개'라는 말은 전년도에 수확한 쌀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이듬해 늦봄 보리가 생산되기 전 식량이 바닥이 나 식량이 매우 곤궁했던 기간을 일컫는다. 온종일 일하고 귀가하신 아버지의 저녁 밥상머리에 쭈그리고 앉아 남겨 줄 때를 기다리던 가슴 아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버지도 배고프셨을 텐데 남겨주신 이유를 그때는 몰랐다. 그 당시 우리는 한 끼 배불리 먹는 게 작은 소망이었다.

어릴 적 정월 대보름에 앞서 쥐날(子日)에 해충의 월동처를 제거하기 위해서 마을 부근의 논둑과 밭둑에 일제히 불을 놓아 잡초를 태우던 '쥐불놀이'가 있었다(현재 천적보호와 화재 예방을 위해 논둑과 밭둑 태우기를 하지 않도록 권장). 그리고 국민학교(초등학교)시절 가장 싫어했던 숙제 중 하나가 쥐를 잡은 증거물로서 '쥐꼬리'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식량이 부족한 시절의 이야기다.

1970년대 초 통일벼라는 벼 품종을 개발 농가에 보급하면서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지만 외식산업과 맞물려 쌀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시대가 됐다.

논은 벼만 자라는 공간으로 알기 쉬우나 사실 날씨와 온도에 따라 수많은 생물들이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작은 지구라 할 수 있다. 식물이 자라는 모태인 토양과 생명의 원천인 물이 풍부하여 식물뿐 아니라 곤충을 비롯한 동물, 곰팡이에게도 살기 좋은 장소이며 식물로서는 주인공인 벼를 비롯해 잡초와 수생식물들이 서식하고 미꾸라지 등의 어류, 개구리 등의 양서류, 거머리 등의 무척추 동물이 살고 있으며 철에 따라 많은 새와 메뚜기 등 곤충들이 사는 공간이다.

논에서 벼를 제외한 식물들은 모두 벼와 영양성분을 두고 다투는 관계인 잡초와 벼를 먹이로 삼으려는 병해충, 이를 막으려는 농업인의 대결은 1년 내내 벌어지는 전쟁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경쟁력이 약한 벼를 지키기 위해서 농업인은 수 없이 논을 둘러보고 적당한 때를 가늠하여 필요한 일거리인 논갈이, 모심기, 김매기, 병해충 방제, 물 관리, 수확작업 등 벼와 경쟁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보통 고되다고 표현하는 농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벼농사를 재배하다 보면 벼꽃이 핀다. 벼꽃은 매우 작고 3~5일간 일시에 피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벼꽃은 암술 1개에 수술 6개로 이뤄져 있으며 바람의 도움으로 자가수분을 하여 수정된 자방(子房)이 현미가 되고 계속 발달해 누렇게 되고 수분이 감소하면서 현미의 모습이 완성돼야 작고 조그만 쌀 한 톨이 만들어진다. 농부가 한 해 동안 노심초사 땀과 열정을 쏟아 부어 얻어낸 노력의 결정체로서 벼의 다음세대를 담고 있으며 사람에게는 식량을 제공하는 없어서는 안 될 쌀이다.

현재 1인당 1일 쌀 소비량은 184.0g으로(연간 1인당 쌀 소비량 67.2㎏)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즉 밥 한 공기(300㎉)를 쌀 100g으로 가정 시 하루에 밥 두 공기 미만 소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국민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1년 4계절 365일 농업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생산하는 쌀 한 톨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쌀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먹을거리이다.

쌀을 뜻하는 미(米)는 쌀 한 톨을 얻기까지 농부의 손이 무려 88번(八+++八)이나 필요함을 표현한 회의문자로 보기 드물게 장수하여 축복을 받아다 하며 부러워하던 나이인 미수(米壽)는 쌀 미(米)를 써서 88세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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