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

2014.05.13 13:53:30

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나는 지금도 어머니와 싸운다. 아흔을 넘기신, 그래서 당신 몸을 겨우 추스르며 지내고 계시는 분과 싸우다니 지나가던 소도 그 큰 머리통을 절레절레 흔들며 웃을 일이다.

20여 년 전 선친과 사별하고 홀로 되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겠노라 다짐했었다. 매번 일주일을 넘기지 않고 찾아뵈었다. 어렸던 아이들도 기꺼이 따라 나섰고, 나도 제법 효도하는 줄 착각했다.

찾아뵙는 날이면 언제나 어머니께서 미리 저녁을 준비해놓고 기다리셨다. 불편하실 텐데 그만두라고 말씀드리면, 그것이 어머니의 기쁨이고 손주들 만나는 즐거움이라 하셨다. 문제는 아내나 나나 식사량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데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입이 짧아 어려서부터 늘 깨지락거린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터였다. 그런대로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저녁을 먹고 있노라면,

"애비, 뜨신 밥 좀 더…?"

하시며 거의 다 비워가던 밥그릇에 밥이 한 주걱, 지금까지 먹은 만큼의 양이 다시 보태지는 것이었다. 특공대의 기습처럼 이뤄지는 일이라 말릴 틈도 없었다. 처음엔 그게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라고 애써 팽만감을 밀어내며 받아들였다.

"에미도, 뜨신 국 좀 더…!"

아내의 국 대접에 또 국이 부어지며, 어머니의 국자와 주걱은 식탁 위에서 분주하기만 했다. 방문 때마다 반복되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아내와 나는 점점 손사래부터 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수저질을 멈추고 할머니를 바라보며 웃었다.

'뜨신 밥 좀 더, 뜨신 국 좀 더, 고기 더, 과일 더, 떡 더, 심지어 소주 더…'는 물론, '이참에 냉장고 내용물 좀 갈아 보려네' 하시는 듯 종종 걸음을 치시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쌀밥이 귀했던 시절, 쌀밥을 꽁보리밥으로 잘못 알고 있던 내가 부엌 궁뎅이에 매달려,

"엄마, 꽁보리밥 줘, 꽁보리밥!"

하고 징징거렸다는 건 동네 어른들의 말로 일소(一笑)에 붙인 추억이 된 지 오래지만 사실 그 어렵던 보릿고개 시절에도 나는 밥 굶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쌀밥을 찾던 내 어린 시절을 고래 심줄처럼 질기게 기억하고 계신 걸까? 고깃국을 자주 먹이지 못했던 아픔을 원죄의식처럼 간직하고 계신 걸까?

어머니는 늘 집 나갔다 돌아온 자식 챙기듯 신경 쓰셨다. 이러니 당신의 아들인 나나 아내에겐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방금 밥을 먹고 오는 길'이라고 거짓 선언하며 들어서는 싸가지 없는 아들에게 수전증으로 떠는 손길이 여전히 바쁘시다. 하 싫은 소리를 해 온 탓인지 그 강도가 약간 수그러들긴 했지만 결국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 우리의 싸움은 과연 언제나 끝날 것인가?

어머니의 이 넘치는 사랑을 익히 알고 있는 형님은 너털웃음으로,

"이제 머지않아 우리 집안의 전설로나 남을 일이네…!"

하며 눈꼬리를 훔쳐냈던 것이다.

아흔을 넘기셨으니 이제 사시면 얼마나 사실까 생각하면 이 전쟁의 승리를 기꺼이 어머니께 돌려드리고, 주면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는 노예가 되었으면 싶은데…!

아, 나는 왜 밑 빠진 독 같은 배를 타고 나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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