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일어서고 있다

2015.02.01 14:32:01

신종석

충북중앙도서관 영양사

가벼운 마음으로 생태탐사에 나섰다. 바람은 아직 노여움을 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매섭게 후려치는 막바지 겨울바람의 손끝은 맵다. 매운바람 사이로 간간이 부드러움을 느낀다.

겨울 동안 동장군의 서슬에 숨도 못 쉬고 납작 자세를 낮추고 있던 봄기운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내일 모래가 입춘이다. 24절기 중 첫째 절기로 대한과 우수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이제 본격적인 농사 준비를 하는 한해가 시작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입춘과 함께 또 새로운 봄은 이만큼 가까워졌고 생강나무는 벌써 꽃 몽우리가 잔뜩 부풀어 올랐다. 잣나무 숲에는 쌓인 눈 사이로 진한 초록 잎을 삐쭉 내밀고 있는 풀들이 더러 보인다. 산과 들엔 조금씩 봄의 기운이 일어서고 있다.

내일 모레면 입춘이다. 우리 집 현관에 일 년 동안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 했던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이라는 문구도 새로 붙여야겠다. 경건한 마음으로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며 해마다 새로운 글귀를 붙이는 것이 중요한 입춘행사가 되었다. 현관문에 딱 붙어있는 그 글귀는 부적처럼 우리가족의 안녕을 기원 하고 있다. 하루를 늘 기분 좋게 시작 할 수 있는 주문인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읽으며 현관문을 연다.

입춘이면 가시가 많은 음나무 가지를 잘라서 문설주에 달아놓고 잡귀의 근접을 막는 풍습도 있으며 보리를 뽑아 보리뿌리로 그 해의 풍년을 점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지금도 가끔 대문이나 상가 안에 음나무 가지를 매단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입춘에는 오신반(五辛盤)을 먹었다고 '동국세시기'에 기록되어 있다. 산갓, 움파, 당귀싹, 미나리싹, 무싹 다섯 가지 햇나물을 눈 아래에서 캐어 임금님께 진상한데서 오신반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옛날 임금님이 입춘에 오신채를 진상 받아 중신들에게 나누어주며 사색당쟁을 타파하고 화합하라는 의미를 부여 했다는 설도 있다.

오신반(五辛盤)은 노란 싹을 가운데 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四方色)나는 나물을 배치하여 내 놓았는데 이는 사색당쟁을 초월하여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여 정치를 잘 해나가자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다섯 가지의 맵고 자극이 강한 나물은 겨울동안 저장식품만 먹고 지낸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고 맛있는 먹거리였을 것이다. 봄이 오는 계절에 처음으로 고개를 내민 식물들의 맵고 자극이 있는 식재료를 찾아 입맛을 돋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 것은 당연하다. 옷깃을 여미는 추위 속에 산과 들에서 혹독한 겨울을 이긴 파릇한 나물은 그야 말로 보약이 따로 없다. 봄이 오기도전에 쌉쌀하고 매콤한 자연의 향이 진한 나물을 한입 가득 물고 봄을 음미하는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눈이 봄바람에 사르르 녹을 무렵이면 동면에 들었던 짐승이나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던 동물들은 얼음을 비집고 올라오는 쓰거나 매운 독성을 가지고 있는 앉은부채나 박새풀을 먹는다고 한다. 독성을 가진 풀들은 동물들의 꼬였던 장을 풀어주며 소화기관을 원활히 해주어 봄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풀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우리네 선조들도 쌉쌀하고 매운 성분을 가진 새싹을 먹으므로 기와 혈이 혼란해져있는 우리의 몸을 바로 잡아준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봄은 햇살을 받으며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잔뜩 기가 죽어 엎드렸던 날들을 털어버리고 일어나서 바구니를 들고 봄나물을 캐러 가자. 캘 수 있는 것이 어디 봄나물뿐이랴!

봄나물의 쌉쌀하고 매운맛은 또 한해를 건강하게 잘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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