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신종석의 에세이 풍경

2015.11.08 13:31:05

신종석

나의 하루는 신문 배달하는 사람의 바쁜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뜨며 시작된다.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기다렸다는 듯이 밀고 들어오는 찬바람이 온몸에 소름 돋게 만드는 청량한 아침이다. 제법 싸늘한 하루가 시작되나보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인천에 사는 친구와 일산에 사는 친구 그리고 서울에 사는 친구가 청주로 오기로 했다. 이제 여유가 있어도 좋을 나이건만 왜 그리 바쁜지 서로 시간내기가 어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하늘은 말고 날씨는 선선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가을산은 햇볕을 받아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붉은빛과 노란빛이 어우러진 가을이 산 아래까지 내려와 서있다. 들녘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벼 수학이 끝난 빈 들녘은 쓸쓸함과 함께 시원한 느낌이다. 사과는 붉게 물들어 가고 있고 잎을 모두 떨군 감나무는 등불 같은 열매를 달고 있다.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 부족함이 없는 넉넉하고 풍요로운 가을이다. 한 폭의 그림이며 이상적인 아름다운 풍경이다. 거기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얼굴은 환하며 예쁜 옷차림도 자연의 일부분인 것처럼 아름답다. 친구들은 편안하고 안정돼 보였으며 모두가 행복하게 보였다. 참으로 굴곡 없이 잘 늙었으며 앞으로도 품위 있고 아름답게 살아갈 것 같은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의 만남은 십년이 훨씬 넘어서야 이루어졌다. 서로 같은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등산은 부담스러워 하기에 가까운 휴양림을 찾았다.

우리는 묵혔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거리며 숲길을 걸었다. 숲에 발을 들여 놓으며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상쾌함 그리고 편안함에 감사한 마음으로 천천히 산책길에 나섰다. 그 곳에는 도토리가 익어 떨어지고 있었고 산사열매가 빨갛게 익어있었으며 밤나무에서는 떨어진 빈 밤송이만 발밑에 뒹굴고 있었다. 발밑에 지천으로 떨어진 열매를 주우며 우리는 기뻐했다. 자연이 가져다준 풍요로운 가을의 결실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한참을 들떠 있던 나는 나무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나무 한 그루 한그루 상처 없는 것이 없다. 어떤 나무는 나무줄기에 심한 상처가 있었으며 가지가 꺾인 나무, 잎이 온통 벌레 먹은 나뭇잎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다. 나무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이만큼자라서 자신의 색깔을 만들고 저마다의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역경을 견디고 살았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하다. 한 친구가 상처투성이인 상수리나무를 쓰다듬으며 "나도 이렇게 아프게 살았지" 하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모두 숨 죽이고 그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남의 애기 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또 다른 친구도 그 친구의 이야기가 끝나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는 낙엽이 지는 가을날 저마다 나무 하나씩을 끌어않고 고해성사하듯 지금까지 살아낸 이야기들을 주거니 받으면서 때로는 함께 눈물을 글썽이고 때로는 배를 잡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함께 아파하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하면서 공감을 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상처를 치유하며 치열하게 살아낸 우리를 서로서로 장하다고 잘 살았다고 그러기에 더욱 아름답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숲을 내려오면서 뒤 돌아보니 상처를 치유한 나무들이 모여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지막 열정을 태우고 있었다. 친구들은 가을 풍경만큼이나 넉넉하고 풍요롭고 자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바라보니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가을 숲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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