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

2015.11.30 15:53:36

김정일

충북보건과학대학교 청소년문화복지과 교수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내과 의사이자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 1898-1986)는 사람의 인생을 4계절에 비유해서 쓴 책이 있다. 그 내용은 자연에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듯 인생에도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연계의 춘하추동은 계절에 따라 끝없이 순환하는데 비해 인생의 계절은 단지 한 번뿐이라고 했다. 인생에 있어서는 출생에서 20세까지를 '봄', 21세부터 40세까지를 '여름', 41세부터 60세까지를 '가을', 61세 이상을 '겨울'이라고 비유했다.

자연계에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사 계절이 있다. 자연계의 사계절에 각각 그 특성이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의 계절에도 그 나름대로 독특한 특성이 있다. 자연의 봄 특성이 새롭게 태어남과 성장이라면 인생의 봄 역시 태어남과 성장이 그 특성이다. 자연계의 여름이 열매의 계절이면 인생의 여름 역시 열매와 결실을 위한 준비의 계절이다. 여름 다음에 오는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며, 그 다음에 오는 겨울은 모든 것을 마감하는 휴면의 절기이다.

인생의 가을은 새로운 적응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생의 봄, 여름과는 달리 더 이상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며, 생의 겨울을 내다보는 시점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새로운 적응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신적 갈등을 극복해 가기 위해서는 철저히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현실적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다.

그 다음으로 인생의 가을은 또 한 번의 선택의 시기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선택이란 새로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진행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정리해야 할 것은 정리를 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절대적 원칙은 없다. 선택은 하되 어디까지나 자신의 남은 생을 보다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그러한 선택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일의 선택도 있을 수 있고, 젊은 시절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는 선택도 있다.

다음으로 인생의 가을은 책임의 시기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는 자기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의미와,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자연계에 가을에서 우리는 모든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를 볼 수 있다.

특히 산이나 들에 있는 각종 식물들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자기의 열매와 색깔을 나타낸다.

봄·여름에 잘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들도 가을이 되면 자기의 고유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러한 현상을 인간의 인생의 책임과 정체성을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인생의 가을에 와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거나, 책임전가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참된 지혜이고 성숙이다. 나의 존재의 의미와 참 가치를 발견하는 성숙한 인생의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