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기획자의 죽음

2016.07.18 15:46:20

김대종

수원문화재단 문화사업국장

지난달 초에 필자는 급작스럽게 한통의 비보를 전달 받았다. 연극계에서 종사하던 후배 H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듣는 순간 필자는 그야말로 쇠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충격적인 소식에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H가 자살한 게 맞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45세의 한창인 나이에 매사 긍정적이고 탁월한 공연 기획력을 가지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았던 사람이기에 그의 자살 소식은 필자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직까지 할 일이 많은데….

횡 한 마음에 넋 놓고 있다가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가 궁금했다. H와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 보니 이유는 돈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연극 제작을 위해 얼마의 돈을 빌려 썼는데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예정된 돈을 회수 할 수 없었고 결국 빚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다. 도대체 그 빚이 얼마였고 얼마나 그것에 시달렸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분명 그답지 못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황당하고 허탈했다. 대한민국 공연 제작자 치고 빚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장르를 떠나 공연예술 제작자라면 액수가 많고 적고의 차이일 뿐이지 거의 대부분이 빚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집 담보는 기본이고 급기야 사채까지 빌려 쓰는 경우도 흔하다. 국민 뮤지컬로 인정받고 있는 뮤지컬 '명성황후' 제작자 윤호진 감독도 '명성황후' 제작 당시 처음에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제작비를 마련하였다고 했다. 그 제작비를 청산하는 데 꼬박 20년이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연제작자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일확천금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유명세를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가 만든 작품이 흥행이 잘 되어 배우들에게 약속한 출연료 지불하고 관객들이 감동하고 즐거워하며 좋은 작품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것 정도가 그들에게 꿈이라면 꿈일까. 배우들의 꿈도 소박하다. 합당한 출연료를 받으며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관객들에게 기억되는 배우로 남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일이 생긴다.

작년에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연극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던 배우 K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생계를 비관해서 생긴 일이라 한다. 또 얼마 전에는 한 평짜리 고시텔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연극인 Y씨도 있었다. 그의 옆에는 빈 소주병과 라면 부스러기가 전부였다. 이들에게는 실업급여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이들의 죽음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죽은 사람만 억울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적 영웅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고귀함을 위해 죽는다고 하였다. 예술이 좋아 예술판에 몸을 던지고 사라져 가는 우리 이웃들이 과연 영웅이고 그들의 죽음이 고귀한 것일까.

아서 밀러의 작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중에 주인공의 아내 린다가 아들 비프에게 하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만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가 미쳤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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