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2016.09.11 14:03:56

신종석

청주중앙도서관 영양사

우리 집 화분에서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는 천년초를 고무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뽑아 쓰레기통에 넣었다. 천년초 라는 이름을 가진 선인장을 우리 집에 들일 때에는 남편의 건강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어렵게 공수해왔다. 지인이 텃밭에 가꾸어 사철 조금씩 떼어서 갈아먹는데 건강식으로 그만이라는 말에 나에게 몇 뿌리 나누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얻어왔다. 화분에 심어 놓고는 혹시 잘못 관리하여 죽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으로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천년초 이다. 어쩌면 이 선인장이 남편의 건강을 다시 찾게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돌봤다. 천년초는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픔을 주는 존재였다. 잔가시가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어쩌다 화분의 선인장을 스치기만 하여도 보이지도 않는 가시가 손등과 손바닥에 박히어 어찌나 성가시게 하던지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빼어낼 수도 없고 따끔거리며 사람을 은근히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남편이 위암 판정을 받고 위 전부를 절재 하는 수술을 받고 조심스럽게 생활한지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위암이라는 사실을 통보 받았을 때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 암 이라네!" 하고 말했을 때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수술하면 괜찮겠지 뭐!" 하고 말하고는 서로 눈을 마주보지 못했었다. 막상 사람이 아프니 자꾸 마음이 약해졌다. 암에 좋다는 것들은 왜 그리 많은지 또한 좋다고 말을 들으면 그것을 꼭 구해다 먹이고 싶은 욕구는 왜 그리 강한지 많은 인내가 요구되는 시간을 보냈다. 좋다는 것을 알면서 안 먹여도 마음이 불편했고 먹이려니 정말 이게 맞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다행이 남편은 이말 저말 듣고 이런저런 약초며 식품을 구해오는 나를 못 마땅히 여겨 자기는 의사가 권하는 약이나 식품 외에는 절대로 먹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라고 선전포고를 하는 바람에 마음 편해 질 수 있었다. 천년초 라는 선인장도 우리 집에 기대와 희망으로 입성을 했지만 한 번도 약재로 쓰이지 못하고 우리에게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가시로 늘 남편의 암 투병으로 뜨끔뜨끔 느끼는 아픔 꼭 그만큼의 통증을 선사하고 그의 생은 졸 하고 말았다.

마지막 진료를 하고 돌아온 남편은 이제 암으로부터 졸업을 했노라며 병원으로부터 받은 축하카드를 내밀었다. "위암 수술 후 5년간 의 치료와 검사를 성공적으로 마치신 것을 축하 합니다. 그동안 저희 의료진을 믿고 5년간의 치료과정을 잘 견디신 귀하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카드를 받아들고 코끝이 찡 해졌다. 의료진을 믿고 치료에 전념한 남편에게 나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고생하셨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건강한 삶을 위하여 우리 함께 노력 합시다"라고 우리부부는 암 투병을 하면서 두 사람 모두 많이 바뀌었다. 늘 조급했던 마음을 다스릴 줄 알게 됐고 늘 부족한 것 같고 만족 할 줄 몰랐던 욕심도 조금씩 없어졌다. 서로가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도 커졌고 서로에게 기대하는 기대치는 낮아졌다. 쫓기듯 살던 삶이 의미 없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암 선고로 우리는 더욱더 단단해 졌으며 남들보다 삶의 보폭이 좀 더 느려졌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좀 더 냉정해 졌고 바로 바라 볼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누구나 한번은 꼭 격어야 할 일이기에 지금부터 차분히 준비하자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 졸업을 했다. 교육기관에서의 졸업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일련의 과정을 마치고 일단락을 짓는 일은 다반사였다. 얼마 전에는 남편이 다니던 직장도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졸업을 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은 좀 더 천천히 여유롭게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곳에 이를 때 까지 함께 걸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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