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15회

2016.11.24 18:44:03

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퇴출자 선별계획 공고가 뜨고부터 분위기가 더 살벌해졌다. 전에는 오다가다 마주치면 인사라도 반갑게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나또한 동료들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 전혀 휩쓸리지 않는 사자는 동방뿐인 것 같다.

"김 사자님!"

저쪽에서 동방이 나를 보고 헐떡이며 달려왔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뛰어다니나·"

"김 사자님을 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가워서 얼른 인사하고 싶잖아요."

"그러고 보니 요즘 자넬 못 본 것 같구먼."

"헤헤. 지난번에 그 아기를 저승으로 인도하고 오느라고요."

동방은 눈가에 웃음을 매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혼하나 데려다주는데 뭐 그리 오래 걸렸나·"

"헤헤. 사실은 삼도천을 못 건너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

나는 어이가 없어 동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삼도천을 한두 번 건너다닌 것도 아니면서. 그걸 왜 못 건너·"

동방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순수하고 어린 영혼을 얼른 저승으로 안내해야한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나는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나·"

동방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아, 글쎄. 저는 그 아기의 영혼을 가슴에 꼭 안고 삼도천 앞까지 달려가지 않았겠어요. 오로지 사명감으로요. 그런데 배에 타자마자 뱃사공이 손을 내밀잖아요."

"그야, 늘 있는 일 아닌가· 그게 그의 업무일 테고."

동방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탁탁 두드렸다.

"아이, 저도 그건 알아요. 그런데 그 아기는 장례절차를 밟지 않았으니 노잣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잖아요."

나도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렇지. 그 자가 노잣돈을 안 받고는 강을 건네주지 않을 테지."

"인정머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뱃사공이 당장 내리라고 호통을 치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 아기는 너무 불쌍하니 좀 봐달라고 사정을 했죠. 그런데도 씨알도 안 먹히지 뭐예요."

"그야, 그 자 입장에서는 당연하지. 그러니까 이승에서 제대로 장례절차를 밟지 않고는 저승으로 가지못해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생기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나·"

동방이 입까지 막고 키득거렸다.

"김 사자님. 제가 얘기해드릴 테니 비밀은 꼭 지켜주세요."

"아, 알았네. 답답하니까 얼른 말해보게."

동방이 뜸을 들이니까 더 궁금했다.

"진짜죠· 꼭 약속 지켜주시는 거죠·"

"알았다니까! 거 참 말 많네."

"이 일이 소문나면 창피해서 저승사자질도 못한단 말이에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 얘기해 봐."

동방은 허리를 베베 꼬더니 조그맣게 말했다.

"글쎄, 그 뱃사공이 심심해서 죽겠다잖아요. 자기는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갔다만 삼천년을 하고 있다고……."

별거 아닌 걸 가지고 비밀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동방이 귀여워서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난 또 뭐라고. 그게 뭐 비밀이라고 그리 뜸을 들이나·"

동방은 입술을 실룩이며 다음 말을 했다.

"그게, 그러니까……. 나보고 자기를 재미나게 해주면 강을 공짜로 건너게 해준다잖아요. 그러면서 저보고 발가벗고 춤을 추라고 해서……."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평소에 무뚝뚝하고 젊잖아 보이던 그 자의 터무니없는 장난기도 그렇고, 그런 장난에 놀아난 동방도 재미있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 놀리지 마세요!"

"우리 조직도 이제는 연예부 하나 만들어야겠어. 그러면 자네의 진가가 발휘될 텐데. 하하하.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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