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예

수필가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습관처럼 메일을 학인하고 뉴스를 읽고 오늘의 날씨를 보면서 하루를 계획하고 시작한다. 잠들기 전에도 확인을 하였으니 별다른 소식이 없는데도 꼭 해야만 마음이 편안하니 병이지 싶다.

아침에 컴퓨터를 못하게 되면 어김없이 휴대폰으로라도 뉴스를 보고 메일과 날씨를 확인하게 된다. 컴퓨터를 이용할 때는 덜 피곤하지만 화면이 작은 휴대폰으로 많은 뉴스를 보다보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후유증도 문제이다. 하루 종일 사물이 겹쳐 보여서 눈앞이 맑지 못하니 행동이 굼뜨게 되고, 컨디션도 엉망이 되어 결국 하루를 망치고 만다.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니 집착이 틀림없다. 정말 큰 고민이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텔레비전과 사랑에 빠졌다. 몇몇 프로그램에 맞춰 생활 패턴이 확 바뀌었다. 먼저 프로그램 시간과 겹치지 않도록 식사시간을 조정하였으며 그렇게 좋아하던 술자리도 마다하고 미리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준비 과정을 마치면 텔레비전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남편은 각 방송사 드라마 시간을 꿰고 있다. 다큐멘터리나 세계여행, 스포츠중계뿐만 아니라 퀴즈와 가요프로그램까지 섭렵한다. 남편 말에 의하면 가수 이름을 맞히는 대회가 있다면 일등은 따 논 당상이란다. 심지어 눈과 귀로 세계여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본인이라 말한다. 그게 뭐 자랑거리라고. 참 난감하기 짝이 없다.

딸아이가 전화를 하였다. 하루만 아이들을 맡아 달란다. 이유를 물었더니, 머뭇머뭇 자꾸 딴청이다. 짐작 가는 일이 있어 승낙은 하였지만 한 번은 꼭 짚고 넘어 갈 일이다.

딸아이는 첫 째를 낳고 독박 육아를 하면서 심한 산후 우울증을 앓았다. 이러다 큰일 날까 싶어 손자를 데려오고 복직하라 권하였다. 그러나 우울증이 회복되기는커녕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혼자라는 외로움 때문에 더 힘들어 하였다. 그렇다고 공부중인 사위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결국 극약처방을 내렸다. 바로 벨리댄스였다.

딸은 점점 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시간 때우기로 시작되었던 벨리댄스가 딸의 활력소가 되었다. 둘째를 갖고 입덧이 심해 휴직을 하였는데 벨리를 하면 그 고통에서 묘약이 되어주었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아플 때에는 위로가 되었다. 춤을 출 때가 정말 행복하다는 딸을 보면서 극약처방을 잘 내린 나 자신이 마냥 흡족하였다. 뭐든 열심인 딸은 자격증을 취득했고 대회와 공연에도 적극적이었다.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춤 때문에 복직을 포기할 지경이라 하니 이거 참 큰일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족은 무언가에 쉽게 중독되는 체질인가보다. 나나 남편, 딸이나 아들 모두 한 가지에 빠지면 집착하는 습성이 있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음식도 그러하며 취미나 운동도 매 한가지이다. 이제는 벗어나야 될 성 싶다. 지나친 집착과 갈망은 독이 되어 자신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자의로 안 된다면, 요즘 한창 구설수에 오른 감초주사의 도움이라도 받으면서 말이다.

감초의 효능 중 첫 번째가 해독작용이라 한다. 몸 안의 독성분을 배출시키고 정화시켜줘, 식중독이나 약물중독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크다고 하니 한번 이용해봄 직도 하다. 어찌 알겠는가. 인터넷과 TV, 춤에 중독된 우리를 구원하고 더불어 국정농단사태에 잔뜩 독이 오른 마음까지도 치료가 되려는지 말이다. 이거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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