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방서동(方西洞)

2016.12.14 15:15:05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方西洞)은 본래 청주군 남일하면(南一下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촌리(擡村里), 평촌리(坪村里) 일부, 신목리(新木里) 일부를 병합하여 방정(方井)의 서쪽이 되므로 방서리(方西里)라 하여 남일면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15일 청주시에 편입하여 방서동이 되었다고 한다.

방서(方西)라는 이름은 일제가 식민 통치를 위하여 우리 조상들의 얼이 서려있는 이름을 무시하고임의로 만들어 명명한 이름이며 주민들과 청주 지역사람들에게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대머리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그런데 현재는 이곳에 이주한 외지인이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대머리라는 이름보다 일제에 의하여 만들어진 방서(方西)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어가고 있어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의 혼과 얼이 서린 지명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일제가 식민지 지배의 편의를 위하여 임의로 만들어낸 지명에는 우리 겨레의 혼을 말살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하루빨리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하자는 의미에서도 이 지역의 역사와 자연 지명의 어원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 지역에는 우리 조상들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는 <방정(方井)>과 <무농정(務農亭)>이 있다.

방정(方井)이란 대머리에 있는 큰 우물터를 말하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 84호로 지정되었다.

이 우물이 거룩하고 영험(靈驗)하여 이곳에 자리잡고 살아온 청주 한(韓)씨 집안에 많은 인재가 나온 바를 기리려고 방정석(方井石)에 옥(玉)관자를 씌웠다는 전설이 오늘날에 전하는데 현재는 물이 나오지 않아서 애석하기도 하다.

방정(方井)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칠 지경이 되자 이곳에 사는 '한란(韓蘭)'이라는 분이 하늘에 제사 지내며 기우제를 지냈다. 한란이 너무 열심히 기우제를 지내다 그만 쓰러져 의식을 잃었는데 이 때 북쪽에서 장수가 나타나 창끝으로 땅을 찌르니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더라는 것이다. 한란이 너무 기뻐 "물이 나온다!" 소리치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으며, 이상히 여기고 꿈에서 장수가 창끝으로 찌르던 곳을 파니까 굉장한 물이 솟아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중 사람이 힘을 합쳐 네모진 큰 우물을 파고 물을 가두니 가뭄에도 마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 후 농사를 잘 지어 곡식이 산같이 쌓여서 복락을 누리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고려 태조 왕건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견훤을 토벌하려고 이곳에 왔을 때 한란이 왕건을 보니 꿈에서 보았던 장수와 동일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은 하늘의 계시라 믿고 한란은 왕건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여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성했으며, 이때 왕건의 10만 군사가 이 우물을 먹었는데도 부족함이 없었고 한란이 식량을 모두 내어주어 군사의 사기를 충천하게 했다는 것이다.

무농정(務農亭)이란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사거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곳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를 말하며, 이 정자가 있는 곳을 무농정지라 하고, 앞 뜰에는 연혁이 적혀 있는 '무농정 유허비(務農亭 遺墟碑)'가 있다.

무농정지는 아주 옛날 청주 한씨의 시조인 한란(韓蘭)이 정자를 짓고 농사에 대한 교육을 시키던 곳이라고 전한다.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자가 있지만 농사를 가르치기 위한 정자는 이 무농정이 유일할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란의 꿈에 용(龍)이 한 마리 나타나서 "내가 득천(得天)하려고 하는데 도와주시오." 했는데 다음 날 아침 황룡(黃龍)과 청룡(靑龍)이 싸우는 것을 한란이 그 중 하나를 죽여버리자 꿈에 나타난 용이 득천하였다 한다. 그 후 용이 들을 마련해주었다고 하여 용개들(龍開)이라 부르며 용개들이 마주 보이는 언덕 위에 무농정을 짓고 북을 두드리며 농사일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자는 천여 년 전 한란이 세운 것은 아니다. 그 정자의 옛터는 폐허화하였고, 숙종 14년(1688)에 후손 한익저가 세운 유허비만 남아 있었는데 1949년 후손들이 정자가 있던 터에 시멘트로 중건하였다가 6.25 전란에 불타는 바람에 1988년에 목조로 재건한 것이다.

이 용의 전설은 오늘날 인근에 있는 용암동, 용정동의 '용(龍)'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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