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창조경제·문화융성

2016.12.22 14:52:35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6개월 전, 창조경제팀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 주저하지 않았다. 독립투사도 아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밤낮없이 고민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조직의 부름은 85만 시민의 부름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창조경제로 새 시대를 열고 문화융성으로 지역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강한 믿음과 신념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창조경제팀 부서 명칭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박근혜 정부의 최대 실정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깃발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고 핏대 세우는 사람이 많다. 최순실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엮이거나 피해를 본 사례는 없는지 따져 묻는 사람도 있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의 한류와 문화비전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인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 땅의 문화정책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이 사실이지만 근원을 찾아 나서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부르짖었는지, 지구촌은 지금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새로운 전략과 방향을 찾아 나서야 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말이다.

앨빈토플러, 새뮤얼 헌팅턴, 이어령 등 국내외 전문가들은 개발중심의 산업자본 시대에서 개개인의 아이디어와 창조적 역량을 중시하는 아티스트 시대, 크리에이터 시대, 융복합 콘텐츠 시대를 맞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상력이나 창의성이 과학기술과 ICT와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영화, 음악은 물론이고 뽀로로, 구름빵, 타요버스, 또봇, 라바, 포캣몬고 등을 보면 콘텐츠 하나로 수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 이상 달성한 국가들은 모두 창조산업 강국이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창조산업을 국가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미디어 엔터테이먼트산업을, 일본은 지적재산산업을, 프랑스는 예술정책을, 북유럽은 디자인산업을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면서 도시와 국가를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삼고 있다,

창조사회에서는 매력적인 스토리와 감성, 상상력, 경험 등 인간적인 요소가 반영된 콘텐츠가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또한 문화산업의 교용유발 계수는 반도체나 자동차보다 2배 이상 높을 뿐 아니라 개개인의 꿈을 직접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 특히 CPND(Contents, Platform, Network, Device)의 가치사슬 구조에서 우수 콘텐츠는 다양한 장르간의 융복합을 통한 파급효과가 크다. 소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은 영화, 게임, 캐릭터, 음악, 관광산업 등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면서 매년 수조원대의 경제적 성과를 이루지 않았던가.

한국문화의 중심에는 단연 한류가 있다. 한국의 흥과 얼과 섬세한 문화DNA를 세계인의 가슴에 심어주고 감동을 만들며 신명을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문예진흥법, 지역문화진흥법,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콘텐츠산업진흥법, 문학진흥법, 관광진흥법 등 관련 법규와 기관 등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지역문화의 특성화와 세계화를 위한 정부나 지자체의 노력이 하나 둘 결실을 맺고 있다.

그런데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흔들리고 있다. 꽃을 피었지만 열매 맺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데 머뭇거려야 하니 속상하고 분통이 터진다. 문화(culture)는 '경작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씨를 뿌리고 싹이 트며 꽃이 피어 열매 맺는 기나긴 여정이다.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며 가뭄과 불볕더위도 이겨야 한다. 이 과정이 힘들고 고단하다고 해서 주저하거나 뒤돌아서는 일이 있으면 안된다.

문화예술과 문화산업을 키우기 위한 인력양성, 체계적인 지원과 운영을 위한 정책시스템, 지역별 특화된 콘텐츠를 글로벌화하기 위한 열정이 필요하다. 특히 기술과 감성이 하나가 되는 4차산업혁명을 이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 이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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