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청풍(淸風) 가는 길

2017.01.11 16:22:39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던 청풍에 밀어닥친 가장 큰 변화의 물결은 바로 충주댐 건설이다.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다목적댐의 건설로 제천시의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부락과 충주시 일부가 수몰지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충주댐 공사가 완성되어 담수가 시작되면서 1985년에는 완전히 물속에 잠기게 되어 청풍면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청풍이 사라지고 주민들은 전국 각지로 이주하였으며 일부는 물태리 산위에 자리잡고 오늘의 새로운 청풍을 건설하여 관광도시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으니 옛 청풍현의 명성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러한 역사를 생각하면서 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산성으로 불리는 청풍문화재단지 위쪽의 정자에서 옛 청풍군의 산하를 내려다보는 감회는 정말 옛 정취를 절로 생각나게 한다.

옛 청풍 읍내로 들어가는 길은 청풍의 동쪽에서 북쪽과 서쪽으로 휘감아 흐르는 남한강 줄기인 청풍강을 건너오는 물길이 있고, 육로로는 남쪽의 수산에서 험한 고개를 넘어 오는 길과 서쪽의 충주에서 남한강변을 따라 오는 길이다. 충주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한수를 거쳐 청풍으로 오게 되는데 강변의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가슴을 졸이며 달리게 된다. 터덜거리며 먼지를 휘날리는 모습이 달린다기보다는 무서움에 떨며 기어가는 것 같다. 그러다가 남한강변의 기암괴석과 하얀 백사장, 그리고 푸른 물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장관을 보면 차에서 내려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하루에 한번만 운행하는 시외버스라 내리지도 못하고, 먼 훗날 꼭 이곳으로 놀러오리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도 아름다운 경치가 이제는 모두 물에 잠겨 다시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안타깝다.

지금은 수몰되어 없어진 한수(寒水)라는 곳은 물에 잠겨 사라진 도시이지만 원래 청풍군의 원서면(遠西面)이었는데 1914년 일제에 의하여 한수면(寒水面)으로 이름을 바꾸어 제천군에 병합된 곳이다. 한수면의 면소재지가 황강리(黃江里)라는 곳인데 '황강'이란 아마도 '크다'는 의미의 '한강'에서 온 말로 추정이 되고 '한수'도 '큰 강물'이라는 의미로 보면 결국 그 뿌리는 같은 말에서 나온 이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강', '황강'이라 부르는 이름이 하류로 흘러 흘러 오늘의 '한강'이라는 이름의 원류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한'이 지명에서 '황'으로 발음되는 사례는 바로 청풍면 황석리에서도 나타난다. 황석리는 청풍에서 강 건너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본래 청풍군 수하면(水下面)의 지역으로서 큰 돌이 있으므로 한똘, 변하여 황돌, 황뜰 또는 황석(黃石), 황도(黃道), 황도리, 황두리라 불리어 왔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제천군 수하면에 편입되었다가 1929년 10월 14일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62년 3월 국립박물관 고고학과장 김정기라는 분이 120여개의 남방식 지석묘를 발견하고 그 중 20 기를 발굴하였는데 뚜껑 돌 아래에 상자 모양의 돌관이 나오고 돌관 동쪽 끝에서 토기, 돌도끼, 돌칼, 돌화살촉, 맷돌 들이 나왔다. 이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하고 있으며 고인돌들은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 놓았다.

청풍의 북쪽 진입로인 황석나루는 제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찻배(차를 싣고 강을 건너는 배)로 강을 건너 청풍으로 들어오는 길인데 버스를 내리지 않고 탄 채로 배를 타고 건너는 것도 신기하지만 버스를 실은 뗏목배를 사람이 노를 저어가는 모습은 신비로움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짜릿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리라!

아무래도 청풍면이 제천군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생활권이 제천이라서 제천 시내를 다닐 일이 많이 있는데 황석 나루는 동쪽으로 멀리 돌아서 오게 되고 차를 배로 건너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에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은 역시 제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북진리에서 내려 북진나루에서 사공을 불러 나룻배를 타고 직접 청풍 읍내로 오는 길일 것이다.

북진나루를 북진나드리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이곳을 통해 외지로 나가고 들어오는 나들목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북진리는 1014년 일제에 의하여 잠시 금수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 지역이 되었고, 해방후인 1947년에 청풍면에 편입되어 청풍의 진입로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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