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十匙一飯)

2017.11.19 13:19:22

신종석

숲 해설가

 가을도 이제 낙엽을 떨구고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기온은 뚝 떨어졌고 이제 우리도 겨울채비를 할 때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김장을 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인사다. 김장도 해야 하고 겨울옷도 꺼내어 손질해야 한다. 추위가 오기 전에 혼례를 치르려는 지인들이 참으로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더불어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라서 그런지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아졌다.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바쁜 계절이지만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집안의 우환으로 마음이 심란한데 김장철이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전화를 했다. 김장을 했는데 한통 주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지만 감사하다고 했더니 엄청 반기는 목소리다. 꼭 한통 주고 싶었다는 말에 마음이 울컥해진다. 요즈음은 김장을 나누는 시절이 아니라 그런지 받는 마음도 주는 마음도 모두 조심스럽다. 하기는 핵가족화 되다보니 김장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한 남에게 나의 음식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막내 시누이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오빠가 겉절이 김치를 좋아하는데 김장을 하면서 오빠 생각이 나서 겉절이 한통과 김장김치 한통을 인편에 보내 주겠다고 한다. 벌써 생각지도 않은 김장이 세통이 됐다. 얼마 후 친정 큰언니가 또 전화를 했다. 김장을 해서 한통 줄 테니 아쉬운 데로 먹고 또 가져다 먹으라는 전화다. 졸지에 김장을 한 것 보다 더 많아졌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나는 베푼 것이 없는데 받기만 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다.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으로 정이 묻어나는 말이다. 본연 스님의 책 '미타행자의 편지'를 인용하면 "예전에는 스님들이 선방에서 안거할 때 당신이 먹을 쌀을 지고 갔다고 합니다. 선원에 미두(米頭)라고 쌀을 관리하는 소임도 있었고, 끼니마다 당신이 먹을 만큼 쌀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또 객승이 오면 모두 밥을 한 숟가락씩 덜어서 주었는데, 이것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유래입니다" 조금씩 마음을 내어 서로 돕자는 뜻으로 옛날부터 내려오는 미풍양속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십시일반의 가장 뜻있는 예로 1907년 나랏빚 1천300만 원을 갚기 위해 대구 서상돈이 제안한 국채보상 운동은 전 국민 25% 이상이 참여한 경제주권회복운동이 대표적이다. 중앙일보에 의하면 1907년부터 1910년까지 나라 빚을 갚기 위해 남성들은 담배를 끊고 여성들은 반지를 팔아 돈을 만드는 과정을 쓴 수기와 언론보도 등 일제 항거의 역사가 남아있는 문건 2천472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한다. 사람들의 작은 마음이 합치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뿐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가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적극 참여해 국제통화 기금을 상환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예로부터 우리는 남의 어려움을 함께 걱정하고 온정을 나누려는 정신이 없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추위를 걱정하며 힘들게 겨울을 지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김장나누기 또는 연탄 나누기 등을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봉사하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자기 것을 내어 놓는다면 다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행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고위층 사람들은 보란 듯이 갑질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밥그릇을 빼앗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 또한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을 단지 '匙(숟가락 시)' 한 글자를 '屍(주검 시)' 로 한 글자를 바꾸면 십시일반(十屍一飯) 열사람의 주검이 모여 하나의 밥그릇을 만든다는 뜻이 된다고 청춘칼럼니스트 김자현은 '김자현의 詩詩한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다. 말장난이라기엔 무서운 이야기다. 가슴 아픈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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