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목재에서 시작한 서북능선이 상학봉과 묘봉, 관음봉까지 내달린다. 밤티능선을 이어받은 문장대가 문수봉과 경업대를 거쳐 천왕봉까지 간다. 저 멀리 희양산과 대야산이 거대한 백두대간 암릉지대를 이룬다. 속리산군 전체가 회색빛의 웅장한 바위 파노라마다.
ⓒ이희진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회원(한전 충북본부)도불원인인원도(道不遠人人遠道) 산비이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 속리산에 들면 한번 쯤 생각하게 되는 글귀다. 속리산을 빗대어 지은 훌륭한 글귀다.
도(道·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 하려한다. 산은 속(俗·세상)을 멀리 하지 않는데 속세가 산을 멀리 한다는 뜻이다. 산의 너그러운 속성을 말하면서 사람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다.
도불원인인원도(道不遠人人遠道)은 중용에 나온다. 그러나 산비이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은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는 설이 있다. 물론 조선 선비 백호 임제(林悌)가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둘 다 확실치는 않다.
누가 지은 게 중요한 건 아니다. 글귀가 주는 교훈이 값지다. 산은 인간에게 교시하는 바가 많다. 특히 변치 말아야 할 도리의 교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청산 원부동 백운 자거래(靑山 原不動 白雲 自去來)로 다시 한 번 가르친다.
속리산은 명산 중의 명산이다. 우선 백두대간이 한 가운데로 지나간다. 여기서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뻗어 내리고 있다. 한강과 금강, 낙동강 물길이 나뉘는 분수령이다. 우리 땅의 큰 산줄기 13개 가운데 하나의 시발점이다.
속리산의 기골은 장대하다. 천왕봉, 문장대, 입석대 등 장대한 바위가 솟구친다. 그 험준한 산세가 품은 유순한 길이 '세조길'이다.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세조길 명칭은 그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붙여졌다.
세조길은 오리 숲에서 법주사 입구를 거쳐 간다. 세심정 휴게소까지 약 2.7km다. 기존의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옆으로 난 오솔길이다. 한 시간 남짓 걷는 길이다. 숲길이다 보니 지루함을 잊게 한다.
법주사 매표소부터 세심정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매표소를 지나면 자연관찰로가 시작된다. 여기부터 세조길이다. 봄부터 가을까진 침엽수와 활엽수가 제대로 어우러진다. 지금은 겨울의 하얀 붓질이 아름답다.
오리숲길 끝에 법주사가 있다. 속리산 주봉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명당이다. 호서 제일가람'이란 별칭처럼 법주사 경내와 암자에는 각종 문화재가 많다. 국보 3점, 보물 12점, 시도유형문화재 22점 등이 있다.
법주사를 뒤로 하고 좀 더 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얼음이 얼어 겨울풍경을 제대로 보여준다. 조금 더 가면 세조가 목욕을 한 목욕소에 도착한다. 목욕소를 지나 세심정 입구에서 세조길이 끝난다.
아쉬움이 남는다. 세조길의 끝을 세조가 다녀간 복천암으로 했으면 한다. 그렇게 해야 기왕에 지은 이름값을 제대로 할 것 같다. 산객들에게 복천을 마실 기회도 주고 소망도 빌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잠시 속세를 잊고 자연 속에 깃든 시간이었다. 동행자와 교감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도불원인인원도 산비이속속리산'을 되뇐다. 겨울 속리산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