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2017.12.17 14:21:10

신종석

숲 해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눈발이 날리며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엄동설한이다. 거실 벽을 바라보니 달랑 한 장남은 달력의 풍경조차 을씨년스럽다. 청문너머 멀리 보이는 은행나무는 앙상한 가지에 잎은 하나도 남아있지 안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만 삭막하고 건조한 풍경이다. 올해도 이루어진 것 없이 한 해를 다 보내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한해를 뒤돌아보고 다시 자신을 돌아보니 또 속절없이 한해가 가고 있다. 풀풀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를 우려내어 거실에 앉았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느껴진다. 기온이 영하10도를 넘었다는 날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기위해 거리에서 차를 기다리며 덜덜 떨었던 생각이 난다. 따뜻한 거실에서 신문을 들고 차를 마시는 여유가 좋기만 하다. 무심코 신문을 드니 반가운 기사가 눈에 띈다. 성동구에서 설치했다는 온기텐트라는 짤막한 기사는 마음까지 훈훈하게 한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빛을 가리기 위해 사거리마다 설치되었던 그늘 막에 이어 이제는 칼바람을 잠시 피해 버스를 기다리라고 온기텐트를 설치했단다. 온기텐트의 이름은 온기를 전한다는 뜻으로 온기누리소라고 부른다고 했다. 한파 속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노인을 발견하고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드려 온기를 전한 중학생의 선행 소식도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온기를 나눈다는 것은 그리 큰돈이 들지도 않고 힘이 많이 들지도 않은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추운 날 사람을 만났을 때 가만히 안아주는 것이나 따뜻한 난로 앞에 옹기종기모여 불을 쬐는 모습이나 시린 손을 잡아주는 가벼운 행동에서도 우리는 온기를 느낀다.

2017년 새해 반칠환 시인의 시 '새해 첫 기적'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새해를 맞이하였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2017년은 가장 나답게 살자고 다짐 했었다. 누구처럼 이 아닌 나의 보폭대로 걸어갈 것이며 나의 능력만큼 살아가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똑 같이 주어진 날들을 어떤 이는 날아다니고 어떤 이는 뛰어다닐 것이며 어떤 이는 걸어서 간단다. 또 다른 이는 기어서 어떤 이는 굴러서 가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면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에서 한해는 지나 갈 것이고 새해는 누구에게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날 한시에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긴 대로 타고난 대로 또 열심히 뛰고, 기고, 구르고, 날고, 아니면 그 자리에서 우리는 살아갈 것이라는 우화적인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해를 시작했었다.

한해를 돌아보니 나는 새해의 다짐은 까마득하게 잊고 채우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비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나쁜 아니라 가족들도 나태하거나 조금 느슨하게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늘 바쁘게 움직여야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사회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새해는 나답게 생긴 대로 살자는 다짐은 어느새 멀리 가버렸고 나는 날고 있는 사람과 뛰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왜 저들처럼 살지 못했을까· 자책하고 부끄러워 했으며 나에게 실망 하고 있었다.

한해를 보내며 나는 박재삼 시인의 12월이라는 시를 읽으며 한해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시집을 손에 들고 큰소리로 낭독해 본다.

"2월 박재삼 /욕심을 털어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활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은 심사로/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욕심을 버리고 사는 1활의 사람 중에 하나가 되어 솜이불을 덮은 따뜻한 온기를 가슴에 담고 산다면 새해에도 따뜻하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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