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름의 왼쪽 윈난성에 닿는다. 파란 하늘 하얀 설산이 웅장하다. 만년설이 푸르게 하얗게 빛난다. 곧바로 낭만적인 여행지를 본다. 매력적 광경은 쉽게 볼 수가 없다. 샹그릴라 언덕에 서야 가능하다. 오색 들꽃들이 장관을 선물한다. 티베트 초원 위를 한없이 덮는다. 노란 유채꽃이 환하게 웃는다.
ⓒ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지나온 길을 다시 살피다
인천공항에서 청두로 출발할 때가 엊그제 같다. 그런데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떠나기 전 영국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에 매달렸다. 그가 1933년 발표한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골똘히 봤다.
태양은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진다. 똑같은 일을 365일 변치 않고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지구 위 곳곳에 신비가 만들어진다. 이번 동티베트 여행은 태양이 만들어낸 신비의 변곡점 찾기였다. 산과 숲, 물과 바람 등 자연의 생몰을 찾아본 역정이었다.
중국 스촨의 서부지역은 장족자치구다. 동티베트 여행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외국인에게 여행이 허락된 시점은 불과 10여 년 전이다. 짧은 역사에도 이미 꿈의 여행지가 됐다. 신비감을 주는 야딩의 태고적 자연비경 때문이다.
꽃구름의 남쪽, 윈난은 더 신비롭다. 신들과 가까이 있는 곳이다. 식물의 왕국, 꽃의 왕국이다. 채운지남(彩雲之南)의 뜻을 알게 된다. 호도협 따라 걷는 차마고도(茶馬高道)는 압권이다. 위룽쉐산이 돌보는 리장고성은 보석이다.
열흘간의 낭만적인 여행지를 복기한다. 지나온 길을 다시 헤아려 본다. 산이 좋아 배낭을 쌌고, 꼬박 열흘을 걸었다. 하늘 아래 길에서 긴 시간 짧은 시간을 보냈다. 허리통증도 참을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낙원이 준 선물이었다.
때론 햇살 내려앉은 푸른 숲길을 걸었다. 때론 맑은 영혼의 땅에 머물기도 했다. 고원 호수에선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웠다. 매혹적인 물빛에 반하고 설산에 경배하길 거듭했다.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 장엄한 호수는 아름다웠다.
산을 내려온 지금도 몸과 마음은 파란 하늘 아래서 굽이굽이 흘러간다. 점차 하늘과 땅의 경계가 허물어진 길로 들어선다. 마침내 신들이 숨겨놓은 땅에 닿아 머리를 숙인다. 신이 깃들어 사는 영혼의 안식처에 감사한다.
오색의 룽다와 타르초가 흔들린다. 부처님의 말씀이 바람을 타고 흐른다. 마음이 치유되는 곳이다. 기적 같은 선물이다. 험난한 여정이 주는 진한 행복이다. 묘한 떨림이 계속된다. 설국의 설산에 시선이 멈춘다.
숨이 막힐 듯 적막한 세계다. 푸른 빛 고원으로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마침내 찾은 샹그릴라다.
◇다시 꿈을 꾸는 시간이다
7월 마지막 주말 어머니의 그리움 같은 피아골을 다녀왔다. 동티베트 여행을 함께했던 산우들과 다시 만났다. 시인 류시화의 '길 위에서의 생각'을 걷는 내내 떠올렸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른 새벽 호도협 중도객잔의 바람이 그리워진다. 시간이 절벽을 뚫고 다시 하늘로 향한다. 억매이지 않는 마법의 시간이었다. 크로노스가 만든 역사를 들여다본다. 시간에 의미를 부여해 준 카이로스에 감사한다.
동티베트 여행에 값진 의미를 담는다.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일행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여 소화한다. 웃는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반짝반짝 윤이 나지 않더라도 꼭 간직해야 할 기억이다. 일행 모두의 인생에 소중한 기억이었으면 한다.
세상엔 수많은 갈래 길이 있다. 하지만 이정표가 없는 시대다. 하나의 문제를 놓고 몇 가지의 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이번 여행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감동을 받거나 웃음을 되찾았다면 한다.
세상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너무 빨라 10년 후는커녕 1년 후를 대비하기도 어렵다. 당연히 기준이 있을 수 없다. 그저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 욕망의 나침반을 따라 나아가면 된다. 세상은 결국 그렇게 바뀐다.
역사는 늘 그렇게 말한다. 관목들은 겹겹의 만년설에서도 산다. 죽는 법도 배운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즐겼다. 마음껏 느끼고 감동했다. 차마고도에 얽힌 수많은 스토리를 알게 됐다. 리장고성의 아픈 사연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자연의 위대함을 알 수 있었다. 위대한 기억은 처음도 끝도 없다. 확신과 불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당당한 삶을 살면 된다. 마음이 가는 길로 가면 된다. 그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사는 법이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신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청춘 같은 삶의 태도다. 여행은 우연의 기회이다. 하지만 여행자는 그 기회를 다시 즐기고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배낭을 싸고 신발 끈을 조여 맬 줄 알아야 한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중도객잔의 밤하늘이 떠오른다. 하바쉐산에서 흘러내리는 관음폭포의 장관이 그려진다. 야딩의 진주해와 우유해, 그 무수한 별들까지도 잊을 수 없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순간들이 내 가슴에 남아 숨 쉰다.
더 벅차고 뚜렷한 감동을 위해 다시 꿈을 꾼다. 네버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을 계획한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찾아 나서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