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교육을 나서며

2019.05.19 15:33:28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이크!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4시 반경 번뜻 눈을 떴다. 오늘은 두 시간 반 거리의 학교로 선비 교육하는 날이라 차가 밀릴 까봐 아직 사위 어둑한데 차의 시동을 켠다. 운전대를 잡고 점차 밝아지는 하늘을 보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제껏 제일 기뻤던 때는 학회 제출용 논문에 "끝"자를 쓸 때였고, 그 다음이 밤새워 공부하다가 책상에서 새벽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창문 여명이 어스레 밝아지면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듯 흐뭇한 느낌에 다시 정신이 맑아졌더랬는데 그 감흥이 다시 새롭다.

일본 동경대 명예교수 오가와 하루히사는 노인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개체적 자아에서 관계적 자아로 나가고, 일자리를 찾는 것에서 철학을 찾는 것이라 했는데 노인은 심심해서 죽는다는 말에 대한 해법도 되겠다. 신 노년에게는 봉사할 거리, 전원생활, 지갑에 용돈을 더할 일, 취향에 맞는 일, 공부할 기회 마련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니 모름지기 보람된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리라. 이에 비추어 보면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의 재능 봉사는 퇴계선생 공부로 마음 수양을 먼저 한 뒤에 학생 및 일반인에게 배운 바를 전수하므로 공부와 보람의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선비교육에 참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 서의 입소교육인데 1일부터 2박3일의 프로그램으로 숙식비가 소요되며 교육 효과가 크다. 또 하나는 지도위원이 직접 학교로 가는 '찾아가는 선비교육'이다. 모두 국비 지원이라 강사비 부담이 없으며, 찾아가는 선비 교육의 교육 경비는 학생 1인당 2천원이다. 학교에 일체의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은 수련원 본부의 지침이며, 매 시간 지도위원의 수업을 참관하는 것도 담임의 재량이다.

요즘 인간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둥, 패륜 범죄와 거칠어가는 사회 풍조로 노약자가 마음 놓고 거리를 다니기도 어렵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려면 온고이지신으로 예전 선비의 사람되기를 살피는 인성 교육 방법도 좋겠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퇴계 선생의 소망인 「소원선인다(所願善人多)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기를」에 붙여 평생 자신을 성찰하며 배움과 행동의 일치를 보이신 선생의 학덕과 삶을 바탕으로 도덕 입국을 바라고 있다.

이러한 교육을 안내할 경우에 관심으로 반색하는 교장의 얼굴은 빛나고 커 보이는데 시정 상인 대하듯 하거나 예산 타령 등 다른 핑계로 에둘러 자리를 모면할 때는 교장실만 휑하다. 좋은 교육 기회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학생들에게 전개할 방법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구실만 찾으면 고 정주영 회장이 5공 청문회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기업인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지옥이라도 간다!' 그렇다면 교육자라면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위하는 마음으로 제반 교육방법을 찾아야 되지 않겠는가. 패기 넘쳤던 선생이 교장 의자에서는 생기도 없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을 어쩌다 보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같이 근무했던 인연과 지연을 살펴 선비교육에 솔선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은 속마음이고, 전하는 안내로 교육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보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은 겉마음인데 이리 방문하는 것이 혹 구차하게 보이려나·

과거 교육부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국적으로 시행될 때, 왜 충북이 계속 전국 1위를 하는지 알겠다며 진단 업체에서 전화가 왔었다. 답안지에 공백도 별로 없고, 포장 실수율도 적을 뿐더러 새로운 평가 도구가 개발되면 교장이 먼저 전화를 하여 소속 학교에 시행 가능성을 타진해 온단다. 타 시도에서는 불똥처럼 피하는 일을 충북에서는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교육의 관건은 적극성이다.

학생들의 심금을 울려 장래의 이정표가 되게끔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잘 전달하리라 다짐하며 지도위원복 옷깃을 여미고 교문을 들어선다. 수업으로 학생들의 눈이 더 빛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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