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가격으로 자신을

2020.02.23 16:01:59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동생네가 전화를 하여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옛날 선비들이 먹었다나? 명륜동 뭐라 하는 고기 집인데 양념 돼지 갈비가 무한 리필 되는 데다 내가 좋아하는 가래떡이랑 야채도 실컷 가져가 먹을 수 있는 푸짐한 곳이다. 식당은 입추의 여지없는 만석이요,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하여 차후에 이런 고기 집에 올 경우에는 냄새가 배지 않게 옷 단도리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양껏 먹고 나오며 기만원 하겠다 여긴 식비가 인당 1만3천원밖에 안 된단다. 그럼에도 나름 1인당 3만 원 정도의 가격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심리적 가격이다.

심리적 가격이란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심리적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책정하는 가격을 말한다. 주로 많이 이용하는 방법은 1만원보다는 9천900원에서 소비자는 할인받는 느낌이 들도록 하든지, 또는 소비자가 가격 변동에 의하여 수요 증감이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범위를 찾아서 결정하는 가격은 모두 심리적 가격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얼핏 예상 가격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나의 개인적 판단에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보면 되겠다. 회비 4만원 내고 참석하는 등산모임에서 평소 갈 엄두를 못 내는 서너 시간 넘을 원거리에 가서 소풍도 하고 게다가 맛있는 회를 저녁으로 실컷 먹었다면 이것도 십만 원을 호가한다고 느끼는 심리적 가격이리라. 사람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없던 여유도 생기는데 가성비 높게 양질의 식사를 저렴히 했다면 부응하는 심리적 포만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 나 자신에 대한 심리적 가격은 어떨까. 조선시대 이래 천지지간 만물의 무리 중에 오직 인간이 가장 귀하다고 가르치고 있었음이 동몽선습에 나와 있다(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最貴).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므로 나와 더불어 상대도 마땅히 예를 다하여 존중해야 한다고 어렸을 적부터 배웠다. 서양에서는 예수님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비슷한 취지의 말씀이 성경에 있다. 동방에서는 대학자 퇴계선생이 수신십훈(修身十訓)-몸을 다스리는 열 가지 교훈-의 첫 조항인 입지(立)에서 '먼저 뜻을 높이 세워야 한다. 성현을 목표로 하고, 털끝만큼도 자신이 못 났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모두 자신에 대한 존중이 있은 연후에 남을 존중하라는 순서를 보이고 있다. 이를 보면 자신을 중히 여긴 다음에야 비로소 남을 최상으로 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주위를 보면 인간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도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자존감은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려는 감정임과 동시에 타인에게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정도로 이해되며 자존심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모두 자신을 좋게 평가하려는 마음이다. 그런데 자존심은 타인을 통해 바라본 자기이므로 비교의 성향이고, 자존감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있는 그대로 자기를 받아들이므로 긍정적인 경향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을 경우 곤두박질치게 되는 자존심과는 달리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확고한 사랑과 믿음이 있어 다른 사람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는다. 배우러 왔다가 마음에 차지 않아 떠나는 제자가 있어도 자기를 몰라본다고 화를 내지 않는 대인이 된다.

심리적 가격으로 자신을 높게 매기려면 자존감이 높아야 할 것이다. 자신을 높게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긴다. 요즘 각박한 정치풍토 아래에서 내로남불이 판치고 SNS가 발달하면서 정신 이상적 징후가 자주 보이는 것도 자존감이 부족한데서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가 아닌가 하여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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