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 우려

2020.03.23 16:46:37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각자도생-스스로 살길을 찾는다'은 중국에도 없는 한자이다. 본디 언어는 문화와 역사를 대변하므로 나라가 백성을 도저히 챙길 수 없던 상황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왔으리라. 조선 시대에는 수많은 환란과 기근으로 민초들의 삶이 참혹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난 선조에 대한 분노가 경복궁 장예원에서 일어난 불길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숨어 들어가 백성을 버려둔 인조와 1809년 대기근과 삼정의 문란으로 부패가 극에 달했던 순조 모두 백성을 미처 살피지 못했던 군주요 자기 몸 운신하기에도 벅찬 처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이 터득한 삶의 철칙이 각자도생이었다.

대한민국 국군사 최악의 흑역사가 현리전투이다. 1951년 5월 오마치를 두고 중공군과 미군 그리고 우리 육군 3군단 유재흥 장군이 지휘했던 강원도 현리 전투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군단장의 무능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군대가 와해되어 70km를 후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장군은 전략 지시도 없이 세스나 비행기를 타고 떠나니 도망했다는 소문만 남겼고, 장교들은 부하를 팽개치고 줄행랑이요 사기가 떨어진 병사는 병기를 버리고 도망하여 중공군의 포위에서 자신을 지켜야 했으니 이야말로 각자도생이다. 전투 후 미 8군단장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이 패장인 3군단장을 불러 당신의 군단과 예하부대는 어디에 있느냐 질문하자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기막힌 답변을 하니 패전의 책임을 물어 3군단을 해체하고 전시군사작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군을 피해 도망하는 군인들의 모양은 참전용사이셨던 필자의 선친에게 들은 바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경복궁에 놀러갔었는데 전쟁 때 저 담을 뛰어 넘으셨다고 하신다. 저 높은 담을 어떻게 넘었느냐고 물었더니 사람이 급하면 없던 힘도 생긴다 하며 지금은 내가 저 담을 어떻게 넘었을까 스스로 놀랍다 하셨다. 군화를 벗지 못하고 여러 날을 죽기 살기로 달려서 발이 부르트면 급한 김에 발바닥 물집을 라이터불로 지지며 도망했는데 아픈 줄도 몰랐다고도 하셨는데 이 또한 각자도생이다.

국왕은 천인합일의 경지에서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 그래서 왕은 하늘이요, 하늘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관료들은 그러한 왕을 보필하여 하늘의 순리를 백성에게 펼치는 동반자이다. 만약 기근이나 역병이 들면 국왕은 침전을 옮기고 반찬을 줄이며 자신의 부덕을 탓하였고 하늘의 노함이 빨리 사라지기를 빌었다.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고 가는 코로나 초기 대응에서 우리나라는 정치가가 의협의 전문적 권고를 무시하고 안이하게 대처한 잘못이 있다. 게다가 국민의 안위가 위태로운 판에 청와대에서 벌인 짜빠구리 오찬은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봉감독의 아카데미 수상도 물론 훌륭하지만 약속을 미루고 비상 국무회의라도 주재했어야 옳다. 대구 경북에서는 인명이 촌각을 다투고 있는 그 시각에 영부인은 뒤로 자빠지며 웃고 있으니 이를 보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대통령이 야당 복은 있어도 참모 복은 없다더니 이런 사진을 언론에 올린 청와대 홍보팀도 참 한심하다. 게다가 집값은커녕 마스크 값도 못 잡는 정부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듣고 있는데 이제 간신히 변곡점을 돌자 나오는 집권 여당의 자화자찬 또한 경망스럽다.

우리는 정부가 변종 바이러스인 코로나의 조기 종식과 더불어 이후에 역병으로 말미암아 사회전반에 드리운 암울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경제와 사회를 어떻게 반전시킬지가 더 궁금하다. 위정자라면 모름지기 예후를 살펴 미래를 대비할 안목을 키워야지 남의 탓이나 하고 그저 목전의 표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국민들을 각자도생의 길로 모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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