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삼다(三多)의 계단을 오르며

2020.04.16 15:32:44

[충북일보] 봄비가 소리 없이 내렸다. 모든 자연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야트막한 산자락 기슭마다 잎눈 꽃눈이 피어나는 생명의 소리가 경이롭다.

이목구비(耳目口鼻)로 느껴오는 아침 산책길이 즐겁다. 귀로 들려오는 꽃피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리고 아름다움은 눈을 현란하게 한다. 입으로는 감탄이 절로 나고 향기로운 봄 향기는 마음으로 다 담을 수가 없다. 살아있다는 생명의 몸짓은 감동스러움을 다 말할 수는 없으나 온몸으로 느껴온다. 쌓인 낙엽사이로 솟아오른 파란 새싹들이며.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벚꽃이 피어 봄바람에 흩날린다. 모든 허상의 잎들을 다 떨구어버리고 나상으로 기도하던 상수리나무도 살며시 눈을 뜬다.

백년을 늙었어도 항상 푸른빛을 잃지 않고 청청하고 늠름하게 서있는 소나무는 마치 산주인처럼 당당하다. 푸른 대나무는 누가 옮겨다 심었는지 한겨울 추위에도 그 절개를 꺾일 줄 모른 채 푸르고 푸르다. 한 폭의 대나무 수묵화를 바라보는 듯하다. 묵죽도(墨竹圖) 여백에 담겨있는 화제의 '죽보평안(竹報平安)' '죽보삼다(竹報三多)' 글귀가 생각난다. 의미는 대나무그림을 보게 되면 편안해지고, 대나무는 세 가지가 많음을 알린다고 되어있다.

삼다(三多)란 무엇을 의미함일까. 중국어 사전을 통하여 다복(多福), 다수(多數), 다남자(多男子)임을 알게 되었다. 대나무의 삼다에 대한 의미는 고고하고 청빈한 선비의 정신과 지조와, 여인의 정절(貞節)과 절개(節槪)를 상징하여 왔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예로부터 선비의 집 뒤뜰에는 대나무를 가꾸어 왔으며, 혼례식 초례청에는 반듯이 대나무를 꺾어다 상위에 올려 놓았었다. 대나무처럼 부부의 절개를 지켜 백년해로의 기약을 뜻함이다. 대나무는 언제 보아도 친근감이 있어 가까이 하고 싶다.

예전 사람들은 대나무에 다복, 다수, 다남자의 상징을 두게 되었을까. 대나무는 생태적으로 두 달이면 다 자라고 만다. 식물 중에서 제일 빨리 크는 수종은 대나무다. 또한 대나무는 용도가 다양하여 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꽃은 보통 백년에 한번 핀다고 함에 대나무꽃을 보고나면 죽는다는 속설까지 있다.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수명이 길었음의 의미가 담겨져 있음에서가 아니었을까. 다남자의 의미는 대나무의 번성함에서 일게다. 씨앗보다 뿌리번식으로 해마다 마디마다 싹이 돋아 올라와 자란다. 대나무 뿌리처럼 많은 자손을 얻음으로 씨족의 번창을 바라는 뜻함에서 이었으리라. 삼다는 이런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나 생각되었다.

봉황새는 대나무 씨만 먹고, 천년의 소리를 지니며 살아가는 오동나무에다 집을 짓고 산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연유에서 대나무를 더욱 사랑하지 않았을까.

수목학 시간에 배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자라고 있는 대나무 종류는 4속 14종이 된단다. 나는 이중에 조릿대, 신이대, 오죽, 솜대, 왕대뿐이 모른다. 지구상에는 12속 500여 종이 자란다고 발표되어 있다. 어떻게 그 특징을 찾아 분류를 하였을까. 감탄스럽다.

대나무야, 대나무야, 어찌도 네 모습은 여절여차(如切如磋)하고, 여탁여마(如琢如磨) 이더냐.

한 계단을 밟고 오르며 여절여차, 또 한발자국을 떼며 여절여차 하면서 산을 오른다.

자른 듯 갈은 듯 쪼고 갈고 닦은 듯, 대나무의 마음으로 산을 오른다.

그동안 배워 알고 있는 지식이래야 무엇이 있는가. 여절여차 부끄럽기 만하다. 또 한발자국 떼어 걸으며 여절여차, 여절여차. 숨이 차오른다. 내 어찌 갈고 닦을 줄은 모르고 게을리 살아왔나. 이 어찌 무정한 세월만 탓하고 있는가. 숨을 고르며 또 한 계단을 오르며 여탁여마, 여탁여마.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엇을 쪼고 갈고 닦았는가. 돌이켜보니 후회스럽기만 하다.

이제서 절차탁마, 절차탁마를 외워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절차(切磋)는 학문을 익힘이요, 탁마(琢磨)는 자기 스스로를 닦음이라고 하였는데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덕을 닦는 것이 곧 절차탁마(切磋琢磨)라 하지 않았던가. 일찍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오며 뒤늦게 뜻을 되뇌니 한숨에 젖을 뿐이다. 여절여차 여탁여마.

아침 해가 높이 솟아올랐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사는 게 인생인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홍은

월간문학 등단.

푸른솔문학 발행인

충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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