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婚禮)에 주례가 없다?

2020.12.21 16:12:55

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요즈음 코로나 시국이 한파로 인해 극심해져서 청첩장이나 부고를 받으면 난감한 입장에 처한다. 대부분 우편이 아닌 SNS로 통보가 오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2.5단계 상태에서 참석여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참석이 어려움을 감안하여 상가(喪家)의 호상(護喪)이 계좌번호를 함께 보내어 조위금을 보내는 것으로 문상(問喪)을 대신하기도 한다.

혼인의 경우 친인척의 연락을 받고는 망설이게 된다. 지난 12일 사촌처남이 며느리를 본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는 고심을 하다가 얼굴이라도 보고 오자며 출발하였다. 신랑이 고모가 없다는 핑계 속에는 친정의 가족들을 보고 싶어 하는 아내의 마음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가친척의 애경사에 가야 만나는 것이 전래풍속인데 반가움은 너무 당연하다. 마스크를 하고 인사를 하니 단번에 못 알아보겠다. 안부를 물으며 악수도 조심스러웠다. 체온 체크를 하고 참석자 기록을 남기고 삼삼오오 모여서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친인척만 초청을 해서 단출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는 좋았다. 예식장이 돔 형식으로 기존의 예식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조명은 어둡고 혼례진행 내용이 천정 벽에 화면과 자막으로 볼 수 있어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전통혼례는 저녁에 신부 집 마당에서 예식을 치러 혼(婚)자는 여(女)자와 어두울 혼(昏)자 결합하여 만들어 졌다. 전통혼인식의 첫 번 순서로 신랑이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을 전안례(奠鴈禮)라 하는데 기러기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덕목을 본받자는 뜻으로 첫째,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킨다. 보통 수명이 150-200년 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고 한다. 둘째,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며 앞서가는 놈이 울면 뒤따라가는 놈도 화답을 하여 예를 지킨다고 한다. 셋째,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어 자식을 낳아 기른다. 이러한 기러기를 본받아 훌륭한 삶의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기러기를 놓고 예를 올리는 조상의 지혜는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신랑 신부가 맞절하는 교배례(交拜禮)의식은 지금도 하고 있고, 신랑 신부가 한 표주박을 둘로 나눈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합근례(合巹禮)는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 표주박은 그것이 반으로 쪼개지면 그 짝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게 되며 그 둘이 합쳐짐으로써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신랑가족 어른들에게 인사드리는 폐백(幣帛)례는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주례 없는 혼례가 점차 늘어나서 어딘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것은 예식의 도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주례로 모실만한 분이 없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인생의 스승이 없다는 것도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빠르게 변모하는 혼례를 보면서 남녀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깊은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편리함만 추구하는 경솔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옛 사람들은 부모가 짝을 정해주면 얼굴을 보지 않고도 혼인을 하여 백년해로(偕老) 했는데 자신의 짝을 찾아 연애를 한 다음 혼인한 부부들이 왜? 이혼이 그리 많을까? 기러기만 닮았어도 이혼하지 않고 잘 살 텐데 말이다.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데는 본인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살아 본 부모나 어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표주박의 반쪽 짝을 찾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더 큰 사회적 문제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듯이 관혼상제(冠婚喪祭)도 그 본연의 의미까지 저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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