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빛난다. 곱고 하얀 살갗을 드러내며 하늘로 뻗는다. 늘씬한 몸매가 눈 풍경을 한층 빛나게 한다. 겨울이면 더 하얗게 빛나는 장면을 만든다. 겨울의 아름다운 동화적 배경을 선물한다. 눈밭의 늘씬한 나무들이 이국을 연출한다. 자작나무에서 자작자작 하얀 소리가 난다. 동심으로 돌아가 하얀 새해 소망을 담는다. 대체 이 신비한 자작나무는 어디서 왔을까.
ⓒ함우석 주필백화(白樺)-백석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시인 백석이 자작나무의 고마움을 그린 '백화'(白樺)란 시다. 자작나무 열매는 마치 오리나무의 길쭉한 형태를 닮았다. 나무의 껍질(수피, 樹皮)은 눈(雪)을 맞은 듯 하얗다. 겨울에 먼 데서 보면 마치 눈이 온 것 같은 풍경이다.
자작나무는 무리를 지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다. 또 다른 세상의 공간이다. 100년을 사는 동안 북방의 추위를 견디며 사람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 사람들에게 제각각 아름다운 기억을 나눠준다. 아낌없이 베풀고 사라진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껍질은 겨울에 땔감 불쏘시개로 쓰면 좋다. 목재는 질이 좋다.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목판 일부가 자작나무다. 수액과 껍질은 약으로도 쓰인다. 껌으로 유명한 자일리톨 성분도 자작나무에서 나온다.
자작나무는 순우리말이다. 기름기가 풍부해 불에 잘 탄다. 타면서 나는 소리가 '자작자작'이다. 여기서 따온 이름이 자작나무다.·물론 작명에 따른 설은 여러 가지다. 한자로는 '백화'(白樺)다. 흰 백(白)에다 자작나무 화(樺)를 쓴다.
자작나무 숲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 특히 겨울에는 하얀색 자작나무와 하얀색 눈이 어울린다. 동화 속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얀색의 자작나무는 태생적으로 눈과 잘 어울린다. 자작나무가 하얀 이유는 살기 위해서다.
자작나무의 수피는 허물을 벗듯 살짝 벗겨진다. 하얀 수피(樹皮)를 벗기면 종이처럼 여러 겹이 된다. 거기에 글자를 새겨 넣어도 좋을 만큼 왁스질이 있다. 옛날에는 종이 대신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그러한 듯하다.
자작나무는 햇빛은 물론이고 눈에서 반사되는 열까지 받는다. 화상을 막고 빛을 반사하기 위해 나무껍질이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 햇빛이 쏟아질 땐 더 아름답다. 자작나무의 윗부분이 빛을 반사하면서 빛의 물결을 만든다.
자작나무엔 반달눈썹 같은 옹이 자국이 참 많다. 높이 자라기 위해 스스로 잔가지를 떨어낸 흉터다. 옹이 자국이 동그란 눈동자를 깜빡일 것 같다. 혹시 모를 공격에 방어 태세를 취하는 것 같다.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란다. 강원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자연적으로 자란 게 아니다. 원대리의 원래 주인은 소나무였다. 재선충으로 소나무가 말라죽어 모두 베어냈다. 그 자리에 자작나무를 심어 지금의 숲이 됐다.
자작나무 남방한계선은 북한이다. 식생대는 북한의 추운 산간지방, 만주벌판, 시베리아, 북유럽에 걸쳐 있다. 남방한계선 너머 자작나무숲은 원대리가 처음이다. 1974~1995년 20여년에 걸쳐 70여만 그루를 조림해 만들어졌다.
대부분 30년을 넘어서면서 나무의 키가 20~30m에 달한다. 축구장 9개 넓이인 6만 m² 규모다. 지명을 따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다. 사위가 고요해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으로도 불린다. '힐링'과 재미를 겸한 숲이다.
이국적인 풍경의 숲은 사진촬영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기 시작했다. 산림청이 진입로를 정비하고 탐방로를 조성해 일반에 본격적으로 개방했다. 그게 2012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