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己之友(나의 진정한 친구)

2021.08.08 15:26:24

김병규

교육학박사

논어 학이편의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에서 습은 鳥數飛(배우기를 마치 새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 한다)라. 習을 破字해도 같은 의미이다. 깃털 羽의 아래에 흴 白은 원래 날 日자로 새가 매일 깃을 나부끼듯 공부를 매일같이 하라는 것이다. 교육에 종사하며 학습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요즘은 그 다음 단락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不·이면 不亦君子乎)에 더 눈이 간다. 나이가 들수록 자리에 책임이 들수록 자존감은 높아지는 반면에 내가 아는 만큼 남들이 나를 몰라주는 경우가 허다해 그런가, 아니면 드러나지 않던 인물이 정작 자리에 오른 뒤에 기대에 부응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가.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주변의 친구를 보라 하는데 친구처럼 다양한 표현도 없다. 물과 고기의 관계 같은 수어지교(水魚之交)-군신간의 관계를 논할 때도 쓰인다. 서로 잘 통하는 막역지우(莫逆之友), 귀하고 향기로운 금란지교(金蘭之交)나 지란지교(芝蘭之交), 관중과 포숙아 같은 관포지교(管鮑之交)에 어릴 적부터 같이 논 죽마고우(竹馬故友)와 총각지교(總角之交)에 친구대신 목을 내 놓을 지경인 문경지교(刎頸之交)도 있다. 신분을 벗어난 우정이면 포의지교(布衣之交)요 나이를 초월하면 망년지교(忘年之交)다. 인간사가 복잡한 만큼이나 친구에 대한 표현도 많다.

碧梧 이문량(1498~1581)은 농암 이현보의 차남이며 퇴계선생의 자별한 친구로 회자된다. 선생이 서울로 벼슬하러 갈 때 미완성인 도산서당 건립을 부탁하고 갈 정도로 믿은 친구이며, 말년에 청량산 유람을 같이 하려다 늦어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라는 절창을 남기게 한 분이다.

선생의 부음에 지은 벽오의 만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람들은 면식을 구하지만 (人皆求識面)

나는 다행히 지기가 되었네 (我幸爲知己)

사람들은 이웃에라도 살기를 원하는데 (人皆願卜隣)

나는 다행히 인리로 살고 있네 (我幸居仁里)

어릴 때부터 어울렸으니 (相隨自妙齡)

간담도 서로 환히 보네 (肝膽兩相視)

좋은 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하였고 (良辰與美景)

숲속에서 즐거움을 다 하였네 (林園窮樂事)

내 생이 헛되지 않았음은 (此生不虛過)

그대를 만났음이라 (餘波之所被)

근래에는 서로 늙어 (近來各衰暮)

생각만 할 뿐 만나기는 어려웠네 (想思懶相値)

인생은 본디 풀잎 같지만 (人生本草草)

어찌 이리 갑자기 가는고 (豈意遽至此)

규벽이 홀연히 광채를 잃고 (圭璧忽淪精)

남천이 맑은 기운을 거두었네 (南天收淑氣)

(중략)

저승과 이승이 하룻밤 격하였으니 (幽明隔一夜)

평생 약속을 저버렸구나 (孤負平生志)

양담의 무한히 흐르는 눈물을 (羊曇無限淚)

어찌 한두 줄 글로 나타내리오 (聊復寫一二)

이별의 시간이 길다 하지 마소 (莫謂別多時)

내 나이 일흔 넷이라오 (吾年七十四)

노래 참 잘 하는 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제목이 연상되는 만사이다. 비록 지금은 유와 명으로 갈라질지라도 금방 만나게 될 거라고, 친구의 靈前에 눈물을 삼키며 보내는 노선비의 이별사는 감동 그 자체이다. 어찌 이리 친할 수 있을까. 천만매린(千萬買隣)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하늘이 낸 지기지우(知己之友)다.

그러면 나의 지우(知友)는 누굴까 해 그동안 연을 잇고 살아온 사람들을 되짚어 본다. 인연과 관계에 복잡다단한 평가로 살피곤 슬며시 소심해 지는데 산길에서 뒤 따라오는 아내를 보니 지우가 파랑새처럼 가까이에 있구나. 40여 년 곁에서 살았으므로 버릇 등 숨기고 싶은 내면세계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친구다, 더불어 직간접적으로 지금까지 주변에 있는 친구가 모두 지우이렷다. 심성 부족하고 수양 깊지 못한 나를 확연히 알면서도 멀리하지 않으니 이 또한 지우가 아니겠는가.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친구 덕에 살면서도 정작 친구의 필요성을 모르고 사는 요즈음 벽오 선생의 만사에 비춰 지기지우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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