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신록의 계절에

2021.08.19 17:43:47

[충북일보] 이른 아침 남쪽 창을 열면 'ㄴ'자로 시원한 아스팔트 도로 앞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층 한옥과 이층양옥집, 그리고 한가롭게 보이는 삼층 상가 옥상 넘어 우암산 정상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아름답다.

남쪽 창문 아래 텃밭의 콩잎은 나풀거리며 밝은 햇살이 새로운 힘을 청하는 모양이다. 무성한 호박 넝쿨도 뻗어나갈 힘을 얻기 위해 햇볕을 만끽하고 있다. 노란 적삼을 입은 후덕한 아낙네 모습의 호박꽃 옆에 숨어 있는 애호박들, 반들반들하게 빛을 발하며 매일 아침 볼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은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아내의 평소 소원이 늙어서는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일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고 버릇처럼 이야기했었다. 칠 년 전 일이다. 내 나이 일흔다섯, 망설인 끝에 백여 평의 밭에 건평 38평의 이층집을 지어 파란 청기와를 올렸다. 대문 위에는 장미꽃으로 아치를 만들고 앞뒤 옆 텃밭을 아내가 불편 없이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동남쪽에는 팔십여 평의 텃밭이 좁고 길게 놓여있다. 대파 한 두둑, 참깨 다섯 두둑, 경계 둑엔 키다리 옥수수가 길 따라 심겨 있고 그 밑엔 강낭콩의 어여쁜 꽃망울이 바람에 흔들리며 웃고 있다. 현관문을 열면 부드러운 햇살 아래 펼쳐진 넓은 들녘이 보이고 하루에 즐거움을 준다. 푸른 쥐똥나무 담장 아래 보름 전 이앙기가 논바닥을 오고 가곤 했다. 모는 벌써 땅 냄새를 맡아 파란 물결을 일으킨다. 저 멀리 우암산으로 이어지는 새티재, 이티재 그리고 애잔한 전설을 담고 있는 구녀성이 선명하게 보인다.

철길 옆에는 작은 남새밭이 있다. 취나물, 상추, 아욱 등을 길러 자식들은 물론 이웃들과 나누는 재미로 아내의 취미 생활 장소이다. 텃밭 바로 옆은 충북선 철로가 놓여있어 오늘도 변함없이 기차는 옛 추억을 싣고 달려온다. 멀리서 들려오는 힘찬 기적소리에 책가방을 허리에 끼고 정거장으로 달려가 화물을 운반하는 곡간 차(車)지만 불평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학생들 속에서 재잘거리던 기차 통학 시절이 그리워진다.

육교 아래로 흐르는 석화촌 옆 넓은 논은 파란 창공에 맞닿아 있고, 한 쌍의 백로는 벼 포기 사이로 성큼성큼 발을 옮기며 먹이를 찾고 있다. 텃밭에서 삽과 괭이로 이랑을 만들고, 아내는 씨를 뿌려 채소밭은 물론 꽃밭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는 즐거움에 힘 드는 줄 모른다. 무릎이 아파서 잘 걷지 못하며 쉴 수 있는 여유 시간도 아까워서 몸에 밴 일을 떼어내지 못하고 허리 굽혀 부지런히 호미질하는 아내 모습은 푸른 새싹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어떠리' 라는 옛글이 생각난다.

풍광 좋은 전원(田園)에서 새벽에 한 시간, 오후에 한 시간 반, 햇빛과 친구 되어 텃밭에서 열심히 일하며 전립선, 뇌졸중, 파킨슨병과 투병하며 오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눌해졌던 언어가 정상에 가까워지고 오른쪽 손 떨림도 덜해 붓을 잡고 서예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커다란 행복이다.

찬란한 태양의 빛이 가득한 넓은 전원에서 아내와 같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든 지인들이 늘 보살펴 주신 덕분에 만사 자족(自足)하며 산수(傘壽)를 지나 미수(米壽)를 바라볼 수 있음은 진정 감사할 뿐이다.

파종을 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참깨와 옥수수는 내 키보다 더 커가고 방긋 웃던 강낭콩꽃은 열매가 되어 주렁주렁 매달렸다. 무성한 호박넝쿨이 한없이 뻗어나가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본다.

배금일 프로필

청주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청원군의회 초대, 2대 의원

청원문화원원장

청주, 청원통합 군민협의회 공동의장

현)내수 서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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