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떠오르는 추억

2021.09.13 17:06:50

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더위를 피해 계곡을 찾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성큼 닥아 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가을 추(秋)자를 자원(字源)풀이 해보면 벼화(禾)+불화(火)를 형상화 했는데 가을은 오곡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벼 이삭을 뜻하여 벼(곡식)가 햇볕(火)에 익어가는 계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秋자는 '가을'이나 '시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秋자의 갑골(甲骨)문을 보면 禾자가 아닌 메뚜기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메뚜기를 구워 단백질을 보충하던 시기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본래'가을'은 메뚜기를 구워 먹는 계절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전(小篆)에서 메뚜기가 아닌 禾자로 바뀌면서 수확의 계절인 가을을 뜻하게 됐다고 한다. 한자는 뜻글자이므로 한자를 만들었던 시기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어 가을에 벼이삭에서 볼 수 있는 메뚜기를 구워먹는 민족은 동이(東夷)족 뿐이었다고 한다. 농약으로 지금은 보기 드문 메뚜기를 구워 먹었던 민족은 한자를 처음 만들어 사용했던 동이족이라는 것을 유추(類推)해 볼 수 있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결실, 수확, 추억, 코스모스, 소풍, 수학여행, 운동회, 독서, 풍요, 사색, 단풍, 추석, 알밤, 홍시 감, 사과, 낙엽, 등 수없이 많다.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을 바라보며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시골길을 걸어가노라면 파란 하늘에 고추잠자리 떼가 날아다니는 풍경은 너무 아름답고 낭만이 넘쳐난다. 뒷동산을 하얗게 물들였던 밤꽃이 지고 밤송이가 굵어지더니 알밤 삼형제가 세상을 향해 웃는다. 과수원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풍요를 알리는 사과도 빨갛게 익어가고, 올해는 유난히 많이 열린 대추도 붉게 익어가고 있다. 감나무엔 파란 감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어 껍질을 벗겨서 주렁주렁 매달아 햇볕에 말리면 호랑이도 겁을 냈다는 맛있는 곶감이 되고, 늦가을이 되도록 나무에 매달려 몰랑몰랑한 홍시가 되면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리게 된다. 가을볕에 시골 마당에는 고추를 말리는 풍경과 초가지붕에는 하얀 박이 달덩이처럼 누워있는 옛날 풍경! 여기저기서는 추수 마당질을 하느라 농부의 일손이 바쁜 가을은 마음까지 풍요로운 아름다운 계절이다.

20여 년 전 우리 오남매가 지금은 모두 작고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설악산으로 단풍여행을 다녀 온 것이 추억으로 오버랩 되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10월초 나는 새 차를 구입해 부모님을 모시고 굽이굽이 설악산 길을 운전하며 달릴 때 좋아하시던 부모님 모습이 가을이 되면 생각난다. 대포항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 들뜬 기분에 노래방에 가서 매제들과 놀다가 큰 방에 누워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느라 피곤한 줄도 몰랐던 일! 권금성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니 하늘을 오른 듯이 상기된 표정들이 생생하다. 신흥사를 둘러보고 흔들바위까지 오르며 가족여행 일정을 캠코더에 모두 담았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하루 관광을 영상으로 TV에 재생해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너무 신기해 하시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속초관광을 마치고 낙산사를 거쳐 강릉오죽헌을 둘러보고 한계령을 넘으며 환상적인 단풍구경을 원 없이 했다. 단풍이란 날씨에 따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단풍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남매가 부모님과 함께 가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 가슴 뿌듯한 감흥으로 가을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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