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골 계곡은 대략 편도 십리에 달한다. 운수(雲水) 길로 구름과 물을 벗 삼는다. 화려한 가을의 단풍이 천하일경이다. 안으로 들수록 협곡이 점점 장쾌하다. 만추의 암봉이 십리병풍을 둘러친다. 기암절벽을 따라 운수동천이 숨는다. 주왕산 신선들의 넓고 깊은 세상이다. 점입가경, 계곡천지가 만산홍엽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장엄한 가을이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함우석 주필징검다리 풍경.
절골 계곡 왼쪽이 주산지(周山池) 가는 길이다. 주산천의 지류를 따라간다. 새로운 볼거리를 만난다. 산 밑 작은 호수가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인다. 사람들 소리만 아니면 마치 천상계로 발을 들인 듯하다. 하늘과 땅을 잇는 듯 신비롭다.
곱게 물든 단풍이 호수반영으로 거듭난다. 물속에서 곱게 물들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금방이라도 요정들이 튀어나와 뛰어놀 듯 한 풍경이다. 세월이 가도 가슴 뛰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마치 감동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주산지는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다. 왕버들이 물속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300여 년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계절마다 다른 경관과 볼거리를 자랑한다. 울긋불긋 서로 다른 색을 뽐낸다.
주산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이 다르다. 다양한 빛으로 피어난다. 햇빛이 비칠 때는 화려하다. 비 내릴 때는 고즈넉하다.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풍경을 선물한다.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주산지는 주왕산 남서쪽 끝자락에 있다.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별천지 같다. 평균 수심 7.8m의 조그만 산중 호수다. 조선 경종 1년인 1720년 축조됐다. 마을 주민들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주산계곡에 제방을 쌓아 만들었다.
물안개 깔리는 새벽 풍경은 몽환적이다.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다른 세상이 연출된다. 위쪽에는 원시림이 자란다. 인근엔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솔부엉이, 소쩍새 등이 산다. 새벽 물안개가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늦가을 호수 둘레길은 온통 단풍 일색이다. 단풍을 삼킨 호수는 더 화려하다. 바람이라도 불면 호수 반영이 신비롭다. 왕버들과 능수버들도 덩달아 춤춘다. 물속 깊이 몸을 담그고 유혹한다. 햇빛 받은 수면이 윤슬로 반짝인다.
주산지 왕버들은 깊은 물속에 있는 게 아니다. 육지 쪽에 바특하게 자리 잡고 있다. 육지에 속한 존재지만 물을 갈망한다. 대신 물을 갈망하는 대가를 겸허히 치른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버드나무 아래로 모여든다. 참 아름답다.
거울 같은 호수에 단풍가을이 비친다. 하늘과 호수, 둘레의 색 대비가 선명하다. 물안개는 사라졌지만 단풍이 있어 매혹적이다. 영화 속 장면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거기서 다시 한 번 가을을 본다. 다른 하나가 또 다른 걸 채운다.
다시 주산지를 찾게 되면 시간을 바꾸고 싶다. 한낮이 아닌 새벽녘에 꼭 가보고 싶다. 그리고 거기서 물안개 핀 몽환의 세계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