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딸의 삶

2022.07.07 16:31:43

아들 둘에 막내로 딸을 낳아 좋아서 자랑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막내딸이 어느새 대학 3학년이 됐다. 딸은 1991년 교육부 시책의 일환으로 일본 연수생으로 전국 각 대학생 공모에서 선발됐다. 딸을 배웅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대합실을 가득 메운 남녀 대학생들의 패기 넘치는 분위기에 사람 사는 맛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아 즐거웠다. 딸의 발랄하고 생생하면서도 청바지 차림의 수수한 모습과 밝은 얼굴에 구애됨이 없는 당당한 젊음을 부모로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다.

딸을 배웅하고 귀가 중에 공항에서 보았던 하얀 모시 중의 적삼을 입고 딸과 대화하는 남학생 모습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았다. 아내에게 말을 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했다. 딸의 연수가 끝나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왔다. 낯선 청년의 목소리이었다. 부산에 산다며 신상을 간단히 밝혔다. 주인공은 모시 중의 적삼을 입은 학생이었다. 주저함도 없이 "딸과 결혼을 허락하여 달라"는 내용의 전화다. 싫지는 않았지만 웬지 망설여졌다. 그래도 자신만만한 부산 사나이 용기가 가상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딸의 의견을 듣고 신랑감 가정의 근황을 알아보려고 아내와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역에서 신랑 될 사람에 안내를 받았다. 부산의 산중턱 아담한 건물에 시할아버지 시할머니와 건장하신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함께 기거하신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아내는 딸에게 고생하려 시집을 가느냐고 공부나 더하라고 말렸다. 나와 함께 살아오며 대식구 생활의 힘듦을 잘 알기에 걱정이 많았다. 딸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가야 한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귀가해서 딸에게 평소 아버지가 말했듯이 "시집가서 어른 모시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잘 산다"라고 타이르고 층층시하 종가 맏며느리로 시집 보냄을 아쉬움으로 남기고 결혼 준비를 했다.

양가가 오고 가는 예물은 마음으로 주고받기로 하고, 검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사위가 청주에서 직장을 갖고 생활하는 동안은 외손자 둘이 유치원 다닐 무렵까지는 한 동리에 살았다. 사위가 부산으로 발령나게 돼 부산 시집으로 이사를 했다.

딸은 부산에서 맏며느리 역할로 90세의 시할아버지 모시는데 어려움 없이 지낸다는 전화를 친정엄마인 아내에게 가볍게 전해왔다. 기력이 없고 변비로 고생하는 시할아버지의 변을 손가락으로 파낸다 했다. 굳은 변을 파낸 후 시원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불편한 마음보다 편안하다고 했다. 딸의 효행은 고마웠으나 어려움을 보이지 않으려는 딸이 가엽게 생각돼 마음이 쓰라려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시할아버지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정성들여 한다는 밝은 전화 목소리 너머로 딸의 해맑은 얼굴을 보는 것 같았고, 또한 넉넉함이 묻어나 듣기에 부담은 줄었으나 가슴 한편 아려옴은 어쩔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시할아버지의 치매 정도가 심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민망했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들고 숨 쉴 수 없어도 며느리가 담담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지켜본 시아버지는 미안해 하셨단다. 그 이후부터는 시중을 못 들게 하고 시아버지께서 직접 모시었단다.

거동이 불편한 시할아버지가 96세에 돌아가시기까지 시부모님께서 돌보시는 일을 같이 옆에서 거든 것뿐이라고 말하는 딸. 철부지라고 생각하고 걱정해왔으나 어려움을 극복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시집살이 잘 견디어 주어서 고맙기도 하고 가슴이 아리기도 해 눈물이 났다.

아내가 시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조문 갔을 때다. 딸의 막내 시아버지는 손자며느리 잘 두게 해 고맙다는 인사로 아내에게 큰 절을 해 황송하게 받았다고 하였다.

평소 두 아들과 딸에게 "불우한 이웃을 보면 측은지심을 잊지 않고 이웃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늘 말을 해왔었다. 막내면서 외동딸로 말썽 한번 없이 잘 성장해주고 시집을 가서도 시할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펴드려 시댁에서 귀여움을 받고 사니 부모 된 도리로서 마음이 가볍다. 늘 건강하게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도리를 잘 지키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된 마음이다.

배금일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청주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청원군의회 초대, 2대 의원. 청주, 청원통합 군민협의회 공동의장

청원문화원원장 역임.

현) 내수 서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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