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어린생명

2024.05.29 19:08:11

가장 여유롭고 편한 시간은 점심시간이 아닌지. 정신없이 업무와 수업에 시달리다 허기져 있을 때 먹는 점심은 꿀맛 같다. 쉰 살을 넘으면서 생활의 변화와 건강을 위해 산책하기 시작했다. 삼십여 분 정도 걷고 오면 복잡했던 머리도 맑아지고 속도 편안해진다.

무심천 하상도로는 자주 애용하는 길로 출퇴근과 산책을 한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에도 이 길로 걸어갈 때가 많다. 봄에는 벚꽃잎이 비처럼 흩날려 온 세상을 덮으려는 모습도 만끽하고, 가을에는 물억새가 흐드러져 바람에 출렁여 햇볕에 반짝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자동차에서 벗어나 무심천을 마주하며 흐르는 맑은 물과 새들이 자유롭게 비상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즐겁다.

폭우가 내리면 하상도로는 침수돼 출입이 통제되다 수위가 내려가면 출입이 재개된다. 며칠 전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다. 비가 쓸고 간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많은 쓰레기가 곳곳에 널려 있다. 다리 밑을 지나가다가 흙이 파인 곳에 무엇인가 꼬물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음 다리에서 되돌아오는 것이 평소의 코스라 지나쳐 갔다. 돌아오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들을 보니 작은 미꾸라지와 올챙이, 그리고 이름은 모르는 비늘에 푸른빛이 나는 치어였다. 이들은 물이 말라가는 흙탕물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몇 발자국을 가다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강렬한 햇볕에 물은 급속도로 말라 갈 것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편에 나오는 철부지급이 생각났다. 장자는 생활이 매우 곤궁해 지방 관리에게 "저를 좀 도와주시오"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 관리는 "세금이 들어오면 삼백 금쯤은 빌려줄 수 있으니 기다리시오"라고 답했다. 지금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인데, 나중의 수백 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자는 "내가 오는 길 한복판에 수레바퀴 자국으로 패인 물에 붕어 한 마리가 빠져 당장 죽을 지경인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예를 들었다. 붕어가 "물 몇 잔 떠다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볼일 본 후 강물을 잔뜩 갖다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유다.

매우 위급한 상태에는 지금 당장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난 뒤 큰 도움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플라스틱 물병이 보였다. 흙탕물에 꼬물거리는 올챙이, 미꾸라지, 이름 모를 푸른빛 치어를 담아다가 무심천 흐르는 물에 놓아주니 어느새 물 속으로 사라진다.

오후 수업 시간에 점심 때 산책하면서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됐다. 작은 생물들의 생명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한 학생이 푸른빛이 나는 물고기는 블루길이고 유해어종이라 살려주면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자 순간 당황했다. 유해어종에 대해 잘 몰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살아가면서 모르는 것이 더욱 많아짐을 느낀다.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실천이다. 어린 생명체를 살리는 게 급선무였다. 유해어종을 식별하고 처리하는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다. "어린 생명이 몹시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면 이런저런 상황을 따지지 않고 돕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성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하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다른 동물들을 먹이로 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내가 살려준 어린 생명체들이 잘 살았는지는 모른다.

무심천을 지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녁 무렵에는 수면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몸짓이 역동적이다.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모습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는 습관적으로 하상도로를 걷게 되면 물고기를 찾는다. 나와 만났던 생명들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무탈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심정열

-중등교사 퇴임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수필창작 수강

-푸른솔문학회 회원

-효동문학상 수상

-공저: 노을빛 아리랑, 수필창작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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