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도 철학이다

2024.06.06 15:01:10

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찰나에 흘러가는 시간을 들어보았는가. 그 시간의 파장을 듣고 잡을 수 있을까. 찰나에 흘러가는 시간을 듣기란 쉽지 않다. 공간 속에 존재하는 소리를 듣는 것만도 어려운데, 그 소리를 듣고 순간에 어찌 잡는단 말인가. 마치 손끝에 더듬이가 달린 것처럼 감각적으로 지판을 읽어야 한다. 그렇게 정음을 단번에 찾아 못을 박듯 하고 활을 민다. 그리고 파장을 느낀 후 그 소리를 잡아 왼손 끝으로 가져와 파르르 흔드는 게 첼로 비브라토 기법이다. 나뭇잎이 흔들리듯 새가 날갯짓하듯….

가장 중요한 건, 작곡가가 원하는 음 자리를 정확히 찾는 거다. 정음에서 1㎜만 벗어나도 엉뚱한 음이 된다. 이때 멈춘 손가락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 최적량의 손가락 근육을 가져와 집중해서 사용해야 풍성한 파장을 낼 수 있다. 한 손가락만 주인공이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무대 위 백-댄서들이다. 그러므로 다른 손가락들은 뼈 없는 오징어가 되어 흔든다.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이 모든 걸 찰나에 이루고 다음 마디로 가야 한다. 음악은 멈추지 않고 흐르니까.

흔들림도 철학이다. 비브라토연주도 철학이다. 치열한 노력과 인내와 부단한 몸부림이 있었기에 감성을 울리는 풍성한 연주를 할 수 있는 거다. 주인공 손가락을 도와주면서 현란하게 살랑대는 나머지 손가락들을 주목해본다. 그들이 힘을 안 빼면 괜한 악센트가 생기면서 절뚝발이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첼로 비브라토 연습을 하면서 돌아본다. 힘을 빼지 않은 뻣뻣한 나의 악센트로 인하여 괜한 파문을 일으킨 적은 없었는지. 백-댄서보다 주인공 하는 것만 좋아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옳다는 확신이 들어도 남들이 불편하면 물러나야 하거늘, 즉시 힘을 빼야 하거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브라토 완성도에 기여 하는 엄지를 주목해본다. 엄지는 첼로 뒤편에서 주인공 손가락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손가락들은 춤추는 모습이 드러나기라도 하지만 엄지는 그림자처럼 숨어 비브라토 완성을 돕는다. 엄지 역할과 인간사가 대비된다. 왜 우리는 영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걸까. 내가 돕고 그를 높여 영웅을 탄생시키지 않고 끌어 내리려고만 할까.

"애앵~애앵~" 첼로 비브라토 기법은 한마디 안에서 많게는 십수 번까지 흔들어야 하는 고도의 연주기법이다. 완성된 비브라토연주가 제 역할을 잘 해낼 때 얼마나 음악을 풍성하게 하고 감동을 주는지 모른다. 살면서 이처럼 떨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세상과 부딪힐 때 당황하면서 흔들렸고, 사람이 두려워 떤 적도 있다. 사랑이 찾아왔을 때도 강한 떨림을 경험했다. 아픈 흔들림도, 두려운 떨림도, 황홀하고 달콤한 떨림도, 집중하고 노력해야 극복도 하고 정복도 하여 경지에 다다른다.

소심하면 어렵다. 사랑을 쟁취하듯 비브라토 정복을 하려면 용기와 뻔뻔함이 필요하다. "절름발이 매미 소리 언제 멈추나" 하는 남편의 말 정도는 무시하는 거다. 오직 비브라토 완성을 바라는 간절함과 애절함으로 끝없는 반복과 노력을 해야 경지를 넘어 자유롭게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어린 아들이 세상과 눈을 맞추며 방긋거릴 때, 앞구르기 뒤구르기 해보라며 손뼉을 쳐대듯 첼로를 했다. 이유식을 할 때는 씹기도 전에 입에 밀어 넣던 것처럼 했다. 멋진 비브라토 정복을 꿈꾸면서도 시간 투자를 안 하고 노력도 안 하고 마음만 앞섰다. 가지고 싶다는 일념만 있었지 인내하지 않았고 용기도 부족했다. 그리고는 비브라토 정복이 어렵다고만 했다.

봄날 화단을 지날 때였다. 벌 한 마리가 목단 위에서 정지 비행을 하고 있었다. 멈추고 가볍게 흔드는 저 날갯짓, 엄청나게 빠른 속도가 첼로 비브라토를 방불한다. 갈망하는 저 치열한 몸부림이라니. 그래야 하거늘…. 날다가 쉬다가 하면 정지 비행은 안 될 거다. 자유로운 흔들림을 위해 부단히 흔들라고 교습 때 주문받는다. 비브라토 기법 하나만도 매일매일 수년은 흔들어야 한단다. 그래, 그 순간에는 모든 의미와 감각이 손끝에만 있는 것처럼 하리라. 숨마저도 손끝에만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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