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사라진 세상

2024.08.05 14:40:30

이찬재

충주향교 전교·시조시인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양심(良心)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부끄럽다는 말을 한자로 耳+心=恥(부끄러울 치)로 쓴다. 예전 사람들은 마음속에 부끄러움을 느끼면 나타나는 현상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빨개지며 몸을 바르게 가누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잘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으로 변했다. 양심이 순수하지 못해서인지 거짓말을 하거나 양심을 속이고도 얼굴색 하나도 변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TV 화면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더욱이 민의(民意)를 대변하는 정치인들 중에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정의의 투사라도 된 듯 당당함으로 언행을 하는 것을 보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금방 말한 것을 뒤집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을 선량(選良)으로 뽑아주는 혼탁한 세상으로 변했다. 판사들의 불공정한 판결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이(李珥)의『율곡전서』에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꾸짖는 데에는 밝고,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어둡다(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라는 문구가 나온다.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무슨 다툼이 있겠는가? 옛 선현의 짧은 문구가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깊숙한 방구석을 내 스승으로 삼아야지(屋漏在彼 吾以爲師)."아무도 없는 방 안에 있을 때에도 양심에 비추어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계곡 장유의 '신독잠(愼獨箴)'에 나오는 구절이다. 고전명구에는 우리의 게으름이나 오만함을 꾸짖거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어려움 앞에 좌절한 이에게는 용기를 불어넣고, 하고 싶은 일을 두고 머뭇거리는 이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길로 나아가라고 격려도 한다. 또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고 일러주기도 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일깨우며 같이 사는 세상을 바라기도 한다. 세상을 잘 살기 위한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고,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힘을 얻을 수 있으며, 타인과의 소통과 배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은 편안하게 하더라도 육체는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없고, 도를 즐기더라도 마음은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족할 줄 알아 언제나 만족스럽게 여기면 한평생 욕됨이 없을 것이고, 그칠 줄 알아 항상 그친다면 한평생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마음을 밝히는 명심보감에 나오는 명구이다. 우리 사회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너무 뻔뻔스러워진 것은 한 마디로 예(禮)가 무너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정에서 가르쳐야 할 부모교육이 사라졌고, 학교 교육도 교권이 무너져서 올바른 인성교육을 시킬 수 없어 교단이 황폐화 되고 교사가 생을 포기하는 아픔이 학부모들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인격을 갖추는 인성교육은 '인성교육진흥법'이 만들어졌어도 헛돌고 있어 안타깝다. 혼탁해진 세상을 정화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인성을 갖추는 교육이 절실한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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