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배제된 판박이 통합논의 - 청주·청원, 괴산·증평

일방적 추진이 낳은 부작용… 공감대 형성 부터 해야

2009.09.29 18:52:22

-규모 큰 단체장은 선수치고-

통합 찬반이 맞서고 있는 충북도내 4개 기초자치단체에는 공통점이 있다. 통합 대상보다 규모가 큰 자치단체는 통합을 주장하는 반면 통합 대상으로 지목된 작은 자치단체는 통합에 적극 반대한다. 청주와 청원, 괴산과 증평이 그렇다. 규모가 큰 자치단체인 청주시장과 괴산군수가 먼저 선수를 치면 규모가 작은 청원군수와 증평군수가 강력 반발하는 순서도 공통적이다. 또, 인구수, 자원, 행정력, 재정력 등에서 우월한 입장에 있는 청주시장과 괴산군수가 통합 대상 단체장이나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통합추진을 공개선언하고 밀어붙이려는 것도 똑같다.


지난 23일 임각수 괴산군수가 유명호 증평군수 앞으로 '증평·괴산 자율통합 제의'라는 제목의 전자문서를 보냈다. 임 군수는 전자문서를 통해 증평과 괴산의 자율통합을 정식 제안했다. 임 군수는 "현재의 행정구역은 급격한 환경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확대된 경제 생활권과 행정구역의 불일치로 주민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며 "경직적, 분절적 행정구역으로 인한 자치단체 간 소모적 경쟁으로 국가예산 운영의 효율성 저해와 자치단체의 자립기반, 경쟁력 등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군수는 이같은 이유 때문에 통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시대변화와 주민 요구를 반영하고, 지역의 특수성과 지역 문제 해결로 증평괴산의 공동번영을 위해 자율통합을 위한 6개 사항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임 군수가 제의한 '자율통합을 위한 6개 항'은 ▲증평·괴산 자율통합추진위원회 구성 ▲자치단체장 토론회 개최 ▲군의회·사회단체·지역주민 토론회, 설명회 개최 협조 ▲증평·괴산 자율통합 분위기 조성 및 주민홍보 ▲주민 건의를 위한 통합 건의인 서명부 작성 협조 ▲증평 괴산 자율통합에 따른 사회단체에 행·재정적 지원 등이다.

이에 대해 유명호 증평군수는 괴산군의 통합제의를 거절하는 내용의 문서를 괴산군에 회신했다. 유명호 증평군수는 24일 괴산군이 보낸 자율통합 제의 전자문서를 검토한 결과 "증평과 괴산은 역사와 뿌리가 다르고, 군민의 정서와 생활권, 자연환경과 지리적 여건 등 이질감이 너무 많다"며 "양 군의 통합은 오히려 증평군 발전에 저해 요인이 되므로 괴산군의 제의를 강력히 거절한다"고 회신했다.

이처럼 통합을 추진하는 규모가 큰 단체장은 통합대상과 사전에 아무런 의견개진이나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합추진을 언론에 공개하고, 규모가 작은 자치단체장이 강하게 반발하는 현상은 통합논의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민의사가 철저히 배제된 데다가 찬반으로 갈린 단체장들의 명분을 충족시키려는 도구로 주민들이 뒤늦게 동원되기 때문이다.

통합을 주장하는 단체장들은 명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자평할지 모르지만 통합논의 과정 동안 줄곧 일방적 통합추진의 부작용이 나타나며 주민이 배제됨으로써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흡수통합 우려 적극 반대-


각종 여론조사 결과 청주시민들의 절대다수가 통합에 찬성하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청원군민의 과반수 이상이 통합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이의 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최근 들어 통합논의가 격화될수록 청원군민 가운데 통합 반대 입장이 늘어난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현 상태에서 통합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면 투표에 참여하는 청원군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는 분석도 등장한다. 그동안 통합논의에 침묵을 지키던 청원군민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통합에 반대하는 청원군 관계자들은 "통합 찬성론자와 청주시는 인구가 많은 청원군 오창읍, 내수읍이 이미 도시화가 진행됐고 두 읍민들의 상당수가 청주시에서 입주한 경우이며 생활권을 청주시에 두고 있으므로 주민투표를 하면 찬성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청원군민 중 통합 반대자는 투표에 적극 참여하지만 찬성하는 군민들은 투표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다. 또, 청주시장과 청주시의 일방적 몰아붙이기에다가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을 미끼로 한 자율통합 압박에 불쾌감을 느낀 청원군민들의 반감이 어느 때보다 강해 시간이 갈수록 반대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듯 청원군내 새마을단체, 주민자치위원회, 이장단, 생활개선회, 체육단체, 농민단체 등 각종 단체들이 도미노처럼 연이어 통합반대 성명을 내고 있다.

증평군도 비슷한 상황이다. 증평군내 69개 사회단체 대표 모임인 '희망21증평협의회'는 지난 21일 "자치단체 간 통합문제는 지역주민의 뜻이 제일 중요하다. 일방적인 괴산군의 통합 주장에 대해 증평군민들은 불쾌감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며 "사회단체 주도로 서명운동 뿐 아니라 항의 방문단을 구성해 괴산군청과 괴산군의회를 항의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증평시민회도 28일 성명을 발표해 "괴산과 증평 주민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이며 양 지역의 발전을 가로막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괴산군과 증평군은 상생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괴산군수는 양 지역주민의 희생과 불행을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청원군과 증평군이 통합에 반대하는 논리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흡수통합'에 대한 불안감이다. 김재욱 청원군수와 청원군의회, 통합반대 청원군 사회단체, 청원군민들의 통합반대 주장에는 통합할 경우 청원군민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다. 청주시장과 통합 찬성론자들이 겉으로는 동등한 대우를 말하지만 막상 통합이 이뤄진 후에는 사실상 흡수통합의 결과가 되기 때문에 청원군민들이 입는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우려는 지난 25일 청원문화원이 개최한 통합반대 결의대회에서 "청원군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원치 않는 통합을 추진한다"며 "청주시의 일방적 행정구역 통합추진으로 군민 간 갈등과 반목이 커지고 있다. 여론몰이식 행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힌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희망증평21협의회가 괴산군에 보내는 경고문에서 "괴산군이 증평군민의 정서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통합을 운운해 증편군민들은 황당한 상태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일방적 통합 주장에 얼마나 큰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주민은 뒷전, 명분용으로 동원-

충북도내 자치단체 통합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민이 배제되고 단체장들이 주인공 행세를 하는 현실이다. 청주시장과 괴산군수가 상대방 의사도 묻지 않고 "통합하자"고 언론에 공개하면서 선수를 치면 뒤따라 지방의회, 각종 단체, 주민들이 이들 단체장의 목소리에 복창을 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현행법상 반드시 주민투표를 통해 찬반을 결정하도록 돼 있을 만큼 주민의사를 절대시하는 통합 문제에서 주민들은 단체장들의 명분을 정당화 시키는 도구로 전락하는 통합이 지방자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문제제기이다.

통합반대 단체장들도 주민들의 의사보다 자신의 소신을 앞세우기는 마찬가지다. 청원군의 경우 여론조사에서 통합찬성 여론이 과반수 이상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민들의 의사를 제도적으로 묻는 절차인 주민투표 실시를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통합 반대 단체장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의사를 공론화 하면 뒤이어 지방의회, 사회단체 ,주민들이 연달아 통합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지방자치제의 양보할 수 없는 본질은 '주민에 의한 자치'라는 점이다. 그러나 충북도내 4개 시군에서 거론되는 통합찬반은 자치의 주체인 주민은 객체로 물러난 셈이다.

-단체장이 최대 걸림돌-

통합 찬성이든 반대든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통합논의가 아니라 '단체장의, 단체장을 위한, 단체장에 의한' 통합찬반으로 본말이 전도됐다. 통합의 당위성에 대해 주민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행정이 이를 제도화 하는 순서가 아니라 행정이 결론을 내린 후 주민들을 지도하며 따라오도록 요구한다. 행정이 주인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자치제가 낳은 고질적 폐해 중의 하나이다.

단체장들이 선거를 의식해 인기관리에 치중한다는 따가운 지적이다.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 통합을 먼저 치고 나와 여론에서 우위를 점하고 통합이 성사되면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 울 수 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반대 단체장의 책임으로 돌리면 된다. 통합 주장의 선수를 치는 단체장은 손해 볼 일이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격화되는 통합찬반 과정에서 통합을 부르짖는 단체장들이 역설적으로 최대 걸림돌이라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두 번에 걸친 청주 청원 통합 주민투표 결과 청원군 주민들의 반대가 많아 통합이 무산된 배경에 그 답이 들어있다. '청원군민들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에 청주시와 통합찬성 단체들이 위압적으로 통합을 강요하는데 대한 반발'로 요약된다. 현 상황도 유사한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지 않다고 볼 근거가 없다. 신중함과 세련미가 부족하다.

엄연히 상대가 존재하는 통합을 주장하려면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는 의제설정'이라는 민주적, 행정적 예의는 필히 갖춰야 할 도리이다. 이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언론플레이와 포퓰리즘에 나서는 행정은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이며 지방자치제와 거리가 멀다. 이같은 오만의 바탕에는 '규모가 큰 단체의 장인 나는 통합 단체장을 할테니 규모가 작은 단체의 장인 당신은 여기서 끝내시오'하는 퇴출명령과 다르지 않다. 통합을 하자면서 규모가 작은 단체장과 주민들에게 모욕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서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통합 이전에 기초적인 자기희생의 자세와 최소한의 양식이 아쉬운 이유이다.

단체장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주민들은 단체장들의 입맛에 맞게 춤이나 춰주는 격인 통합찬반이 청주 청원 괴산 증평에서 판박이로 진행되고 있다.

/이정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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