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수와 임금의 목욕방법

2010.04.25 19:20:28

행궁(行宮)은 임금이 장기 출타를 할 때 임시로 머무는 별궁을 말한다. 달리 '행재소' 또는 '이궁'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병을 치료하거나 민정을 살피기 위해 궁궐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때 단기간 출타할 때는 막사에서 지내지만, 장기간 출타를 할 때는 별궁을 급조했다.

초정약수는 세계 3대 광천수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특유의 톡 쏘는 느낌은 다른 약수와 크게 구분되는 편이다. 몇해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초정약수 성분을 조사했다. 그 결과, 초정약수의 톡쏘는 느낌은 탄산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생성원리는 다음과 같다.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는 메탄, 유화수소, 이산화탄소, 질소 등의 기체 성분을 갖고 있다. 이중 이산화탄소가 지하 심층수와 만나면서 만들어낸 것이 탄산수이다. 톡 쏘는 맛은 탄산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초정약수의 이산화탄소 분압은 다른 약수보다 매우 높은 편이라고 한다.

초정약수의 알싸한 맛에는 철 성분이 관여를 한다. 지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탄산수는 용출되는 과정에서 암석층을 만나게 된다. 이때 암석층내 철성분이 탄산수에 녹아 들어간 후 지표로 용출하게 된다. 여기서 알싸한 맛이 발현된다. 초정일대 목욕탕 바닥이 붉은색을 띄는 것은 바로 철성분 때문이다.

초정에도 행궁이 존재했다. 조선시대 때 초정약수를 찾은 임금은 세종과 세조이다. 이중 세조는 속리산 복천암을 가는 도중 이틀을 초정에서 머물렀다. 반면 세종대왕은 눈병 치료를 위해 초정에 100일 넘게 머물렀다. 재위 26년(1444년) 초수에 행궁을 짓고 같은 해 3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 58일간, 그리고 같은 7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59일 등 총 117일간 머물렀다고 세종실록은 적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도 '초수(椒水) 고을 동쪽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 세종과 세조가 일찍이 이곳에 행차한 일이 있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행궁의 위치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현재 북이면 선암리 주왕이 마을이라는 설과 원탕이 있는 초정리 그 자체라는 설 등이 양립하고 있다. 전자는 마을 이름을 주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마을 이름 '주왕'은 '왕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설은 다소의 약점을 지니고 있다. 임금이 행차를 할 때는 '왕'(王)이 아닌 '어'(御) 자를 쓴다. 산이름 중에 유독 '어래산'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온양 행궁도를 보면 용출되는 온천수와 행궁은 거의 같은 블럭 안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경우 원탕이 있는 초정리가 곧바로 행궁장소가 된다.

임금의 목욕 방법도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임금의 몸은 옥체라고 불렀다. 따라서 목욕 방법도 일반 백성과는 크게 달랐다. 당시 기록을 보면, 임금은 옷을 완전히 벗지 않고 오늘날 투피스 형식의 얇은 비단천으로 몸을 감쌌다. 세정제는 팥비누를 썼고 그리고 수건은 무명천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목욕물에는 임금의 몸 상태에 따라 호렴, 부용화, 울금 등 각종 한약재를 넣었다. 목욕 시중은 어릴적 자신을 키워주던 유모나 나이 많은 상궁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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