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혼상제(冠婚喪祭)

2010.10.28 18:01:51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유수(流水)와 같다"고 표현한다. 지나간 시간 되돌릴 수 없고 다시 올 미래 역시 기약할 수 없으며 돌이켜 보면 깊은 시름과 상처와 영욕의 삶 모든 것이 흘러가는 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고 가는 시간 속에 고단한 삶의 여정이 묻어있고 그것들은 다시 켜켜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만든다. 그 속에는 가슴 아픈 상흔도 있겠지만 아련하고 마음 시린 추억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미래를 밝히는 등불 같은 문화가치도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은 유수처럼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일상의 소소한 의미들에 초점을 두고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번뇌한다. 지나온 삶이 무익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가치있는 삶을 향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간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 인색했다. 잦은 외침과 일제치하, 6·25전쟁과 근대화라는 뼈아픈 상처를 안고 있기 때문이지만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고 새로운 문화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최근에서야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강조하고 문화원형을 찾고 브랜드화 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관혼상제 역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내포돼 있다.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하며 늙어 죽는 일련의 과정은 개인에게는 인생이라는 단어로 함축되겠지만 이러한 생로병사가 모이면 거대한 문화의 물줄기를 만들게 되며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하여, 문화의 출발은 관혼상제에 있다. 그 속에 수많은 문화원형이 숨어있고 차별화된 문화인자, 즉 문화DNA가 있다. 관혼상제만 엿봐도 그 지역과 그 나라의 문화를 읽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성을 감지할 수 있다. 생각은 다양한 언어를 잉태하고 삶의 도구들을 만들며 문화양식으로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다시 공예라는 이름으로, 철학과 미학이라는 학문으로, 디자인이라는 형태로, 사랑이라는 서정으로 기록되고 발전시켜 왔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관혼상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소통하며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모든 삶의 공간과 생로병사의 과정에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살아가는 일련의 과정 그 무엇 하나 소홀히 다루는 법이 없다.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지만 대자연과 호흡하며 인간 본연의 가치를 도드라지게 하려 했다.

관혼상제에는 인간과 자연을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이 담겨있다. 자연의 캠퍼스라는 게 워낙 신비롭고 영롱해 사람의 마음까지도 명료하게 한다. 흙과 물, 바람과 햇살이 만나 수많은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신비스러울 뿐이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멋과 향과 자태를 자랑하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솔잎 향 가득 머금은 바람 따라 들녘을 걷다보면 내 마음까지 자연을 닮는다. 어느 시인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달콤한 꽃향기로 가득한 4월의 대지 앞에 우리 모두가 넋을 잃고 자정(自淨)하는 것은 우리네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검이불루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화이불치華而不侈) 자연의 삶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관혼상제가 낡고 고루한 옛 풍습정도로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그 어떤 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 관혼상제의 아름답고 소중했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 하고 우성 인자를 문화콘텐츠화 하며 새로운 문화가치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의 세기, 문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슴 뜨거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산박물관, 술박물관, 지적박물관, 예뿌리민속박물관, 한국공예관, 종박물관, 난계국악박물관 등 7개 충북지역박물관 연합특별전 <관혼상제>가 주는 교훈이다.

맑고 청명한 황금들녘을 보라. 나뭇잎은 바람에 서걱거리고 자잘한 빛들은 눈부시다. 살아있는 것들은 기어이 가을의 끝자락으로 불러 모으면서 알곡만을 남길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지난날의 스토리를 담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인간의 염원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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