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와 지리한 장마, 잦은비로 네 번이나 다시 모종을 부어기르고 벌레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내고 비가오면 붓으로 여린 배추잎에 올라앉은 작은 돌들을 떨어내던 농부는 화창하고 날씨좋은 금요일 속이 알차게 들어찬 것은 아니지만 푸른잎 몇장 붙어있는 배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손질을 해서 배추를 절였다.

우리밭의 배추는 씨앗은 비싸지만 배추가 속이 알차게 꽉 들어차는 품종이 아니고 옛날 배추맛이 있어서 도시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품종이기도 하다. 우리는 잔치하는 것처럼 배추를 뽑아서 수도 없이 절이고 씻고 밭에 있는 갓과 시금치 생배추를 뽑아서 도시에서 절임배추를 주문하신 소비자들에게 선물로 택배로 보내드렸다. 몇 년전에 우리한테 절임배추를 주문하여 김장을 하신 양재동의 남자어르신이 생각이 난다. 택배를 잘받았다고 전화를 하시면서' 이렇게 힘들게 농사지은걸 절여서 까지 보내주는데 거기에 갓이며, 생배추 2통, 금방딴 시금치까지 들어있으니 절임배추를 사먹는게 아니라 동기간한테 무언가를 받는 기분이라고 고맙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더니 전화를 끈으셨다. 그리고 이틀후 작은 택배박스가 도착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필체처럼 옛날 어르신들의 글씨처럼 하얀 편지지에는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쓰신 편지의 내용은 "참으로 오랜만에 어릴때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맛을 볼수 있게 해주신 농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년에도 이렇게 맛있는 김장김치를 먹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 라고 씌여있으면서 목도리와 장갑 포도주 한병이 정성스럽게 들어있었다. 절임배추는 정당하게 값을 받고 판것이라 오히려 농사를 짓는 우리가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소비자에게 절임배추를 보낼때 갓, 시금치, 생배추를 함께 선물로 보내드리는 것은 아직도 농사를 짓는 시골의 인정을 느껴보시라는 뜻으로 작은 정성을 보내드린것인데 그 작은 정성을 크게 느끼시고 감동하셨다니 그 어른이 더 훌륭한 소비자가 아니신가 생각했다. 올해는 야채값이 너무 비싸서 김장을 하지 못한 가정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배추 2,000포기를 심었는데 돈받고 판것은 거의 없다. 아마도 농부는 씨앗값과 소금값도 못했을것이다. 그냥 늘 나누어 먹던 사람들과 나누었을게 분명하기 때문에 묻지도 않았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올해 배추 값이 비싸니까 우리가 배추팔아서 돈좀 했을 거라고 좋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배추를 팔려고 심기보다는 여러사람과 나누어 먹으려고 심는 다는 표현이 맞을거 같다. 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올해 같은 해에는 그냥 가지고 가는 것도 미안하다고한다. 야채값이 고기값보다 더 비싸고 쪽파 한주먹에 만원이라니 말이다.

김장하는날 9년째 우리가 김장을 담는날 찾아가는 비인가 시설에 김장김치를 가지고 갔더니 그곳 시설의 원장님이 "올해는 물가가 하도 비싸고 배추가 많이 부족하다고 해서 못오실줄 알았어요." 그러시길래~ 우리집에 김장을 했는데 어떻게 안올 수가 있어요. 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작년에는 너무 많은 곳에서 김장을 해와서 보관이 어려웠는데 올해는 해주는 곳이 없어서 김장 김치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신다. 마음 좋은 농부와 그 농부의 일손을 자원봉사해주시며 김장을 몇 년째 맡아서 자기일처럼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여러사람이 힘을 모아 김장을 한 덕분에 아마도 우리가 만든 맛있는 김장김치는 줄잡아 500여명의 불우한 이웃들과 골고루 나누어 먹게 되지 않을까 한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유난히 크고 작은 불안한 사건 사고 들이 많이 일어났다. 소비도 위축되고 경기도 더욱 침체되어 불우한 시설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더욱 추운 겨울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추운 겨울이 가장 살기 힘든 계절이라고 한다. 따뜻한 말한마디, 작은 정성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황금들판이 갈무리되어진 저녁노을이 평화로와 보이는 초저녁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구수하여 빨리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발길처럼 우리의 따스한 마음들을 모아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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