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과 아트팩토리 - 上

2011.01.26 18:18:36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새해 첫 날, 일간 신문을 뒤적이다가 내 시선이 꽂힌 뉴스가 있었다. '아니. 마굿간에서 음반녹음을 한다고?'로 시작되는 기사였는데 남부 독일 노이마르크트의 마굿간이나 프랑스 중서부 빌파바르 농장 등 헛간과 마굿간이 음반녹음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내용이었다. 해외의 유명 음악인은 물론이고 양성원(첼로), 김주연(바이올린), 지용(피아노)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그곳에서 음반작업을 잇따라 하면서 대박질주를 하고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완벽한 음향장비를 갖추고 방음벽까지 설치한 한 최첨단 시설에서 음반을 녹음해야 한다던 이들이 어떻게 낡고 허름한 마굿간으로 발길을 옮긴 것일까. 인간이 빚어내는 영혼의 소리까지 최첨단 시설이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물이 주는 서정과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옛 사람들의 발자취, 그리고 낡고 허름할지언정 아날로그의 따뜻한 감성과 미세한 떨림을 잡아낼 줄 아는 여백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낡은 교회건물이 도서관으로, 헐리기 직전의 뒷골목이 아티스트의 문화곳간으로, 근대산업의 공장건물이 문화산업과 문화콘텐츠의 요람으로 변신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지구촌이 경쟁적으로 도심재생은 물론이고 경제활성화 전략으로 문화산업과 아트팩토리라는 깃발을 높이 들고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도시발전은 물론이고 국가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은 사례가 수 없이 많아졌다. 시대정신이자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된 것이다.

이처럼 문화산업과 아트팩토리가 시대의 화두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오랜 옛날, 문자도 활자도 없던 선사시대 때부터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보다 낳은 삶을 개척하며 창조적 진화라는 역사의 궤적을 밟아왔다. 득롱망촉得?望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그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탐하는 인간의 본능이 만들어 낸 것이 정보혁명과 산업혁명이 아닐까. 허나, 이들 혁명은 우리에게 언제나 가치 있고 유용한 결과만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획일적이고 시테크의 논리에 매몰되면서 개성미가 사라지고 인간의 감수성과 대자연의 서정마저도 앗아가고 말았다. 국가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세계가 보편적인 가치와 질서로 재편되는 것이 최고인 줄 알았지만 그 뒤안길은 막막하고 누추하며 불안할 뿐이었다.

새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낡고 허접해 지는 법, 근대화와 산업화의 파편들이 하나 둘 버려지고 방치되면서 쓰레기를 양산하고 골칫덩어리를 만들었으며 자칫 지구촌의 대재앙으로까지 확전될 조짐이다. 인간들은 부메랑이 되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있는 이것들 때문에 더 이상 피를 흘릴 수 없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지혜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은 1998년부터 Creative UK라는 창조산업을, 미국은 2000년부터 Creative America 정책을, 중국도 2005년부터 中國文化創意産業이라는 정책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창조산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은 세필드시를 비롯한 몇몇 도시의 아트팩토리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항구도시 세필드는 인구 51만명으로 산업혁명 이후 철강 및 군수산업이 발달한 영국의 대표적인 중공업도시였다. 그러나 1980년에 영국의 극심한 경제침체로 주력산업인 철강산업이 쇠퇴기를 맞자 도시 전체가 침체에 빠지고 일자리가 줄며 실업자가 급증하였다. 세필드는 고심 끝에 1986년에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세필드시위원회를 만들고 10개년에 걸친 문화산업지구 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버려진 도심 공장지대에 콘텐츠 및 디자인 업체, 영화사 등 다양한 문화산업을 유치하면서 경제활동 인구의 10%가 문화산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관광산업으로 확장되면서 문화도시 문화복지를 실천할 수 있었다.

문화산업과 아트팩토리라는 쌍끌이정책에 성공하면서 세계 각국이 총성 없는 전쟁을 시작했으니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탐하는 인간의 욕망은 꺼지지 않는 용광로이며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원이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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