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鄕은 모두에게 축복주는 봉사"

2007.05.24 23:11:44

오는 백발은 오른손에 도끼들고 왼손에 가시들고도 막기 어려운 모양이다.

전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위원장 해고(海高) 이상록(李相祿) 선생(78)을 만나니 이런 느낌이 들었다.
고향 충북을 위해 오랫동안 올곧고 왕성한 활동으로 ‘지역의 어른’ ‘시민운동계의 대부’로 불려온 터라 여전히 꼿꼿하고 우렁찬 호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기억력은 아직 또렷했지만 시력과 청력이 떨어졌고, 신장 기능이 안 좋아 다리 쪽에 한 수술이 완쾌되지 않아 걸음걸이도 불편해 했다.

하지만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인터뷰 도중 불의와 맞서 싸우는 대목 등에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전해지는 목소리로 당신 인생의 좌우명인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한 것을 깨뜨리고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충북 청원군 강내면 저산리의 경주이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청주고, 청주대학교 및 대학원을 마친 선생은 사회생활 초반 25년 동안 교육계에서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영동여고 교사를 시작으로 대성중, 대성여고, 청석고 등 3개 학교 교장을 거쳤는데 특히 이들 3개 학교는 선생이 직접 건설인부들을 독려하며 학교 건물을 새로 지었기에 애착이 더하다.

대성여고 교장때는 “학교부지가 도로계획선에 걸려서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을 건설교통부 장관을 찾아가 설득하여 그 자리에서 도로계획선을 이동시키도록 했는가 하면 ,공사기간인 6년 내내 부인 엄보옥 여사(2006년 작고)가 밤마다 인부들의 밤참을 해 나르는 고생을 시킨 것도 마음에 걸린다.

후진을 위해 선생이 지난 80년대 초반 학교 일선에서 퇴임한 때인 1987년 어느 날 당시 노건일 충북지사가 전화를 걸어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맡아 달라”며 선생의 ‘아킬레스건’인 애향심을 자극했다.

당장 사표를 쓰고 청주로 내려온 선생은 체육회 사무직원들을 모두 선수들의 훈련장으로 보내 세심하게 뒷바라지하도록 했다.

선생 스스로도 매일 도내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을 번갈아 돌며 선수들을 살폈다.

그 결과 전국체육대회에서 만년 꼴찌에 머물었던 충북이 1990년 청주 대회에서는 종합3위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기록했다.

또 당시 체육계 예산이 부족하자 선생은 운보 김기창 화백 등 지역 출신 유명 화가 및 서예가들에게 서화를 부탁, 연하장을 만들어 팔아 22억원을 벌었다.

이 가운데 18억원은 충북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 경비로 쓰도록 교육감에게 전달했고, 2억원은 체육고등학교 건물신축 비용으로, 2억원은 도 체육회관 건립 기금으로 내놨다.

선생 춘추 62세인 1991년에는 경부고속철도 본선역 충북권유치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고향발전을 위한 시민운동 분야에서 힘겨운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 때 선생은 감옥 가는 것을 각오하고 “만약 경부고속철이 충북 지역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경부선에 엄청난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위해를 가하겠다”는 공문을 정부에 보내면서까지 싸워 마침내 8년 만에 승리했다.

더욱이 1994년에는 ‘문장대ㆍ용화온천 개발저지 충북도민대책위원장’을, 이듬해인 1995년에는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위원장이라는 중차대한 현안을 동시에 떠안고 10여년 동안 시위, 중앙 부처 방문, 재판 참석, 주민 설명회, 대 언론 성명서 발표 등의 끈질긴 투쟁을 벌여 끝내 승리를 쟁취해 냈다.

이렇게 강골로 숨가쁘게 살아 오면서도 선생은 문집을 6권이나 냈고, 풍으로 몸져 누운 아내를 10년간이나 병수발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선생은 지금도 “일은 하면 할수록 생기는 거야(生事事生 省事事省)” “애향이란 것은 자신의 조상과 후손에게 축복을 주는 봉사야”라는 화두를 던지며 고향 후학들의 나태를 일깨우고 있다.

/ 박종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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