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의 추모비 문제

2011.04.27 18:10:06

김승환

충북대 교수 / 충북문화예술연구소장

기독교인에게 죽음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영광의 순간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에게 제사(祭祀)라는 동양적 의식은 무의미한 것이며, 하나님 이외의 영적 존재란 있을 수 없다. 물론 이 말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뜻 또는 우주자연의 섭리 바깥에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는 제사를 용인한다. 제사를 문화로 보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천주교는 자살에 대해서 문화적인 해석을 하지 않는다. 동양문화에서 자살은 최후이자 최고의 비장한 결의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책임진다는 고결한 뜻이 있다. 바로 이런 비장한 예식으로 2009년 5월 23일, 일생을 마감한 이가 있으니 그는 한국 16대 대통령인 노무현이다. 국민의 애도(哀悼) 속에 장례가 끝난 다음 청주지역의 추모위원회는 추모객들의 성금(誠金)으로 추모비를 만들자고 결정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박한 추모비가 완성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이 추모비를 상당공원에 설치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여러 보수단체에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비리로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좌파 대통령'의 추모비를 공공장소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의견이 있을 수 있다. 2009년 7월 10일 상당공원에서는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비 건립 반대 궐기대회'가 열렸고, 진보와 보수가 대결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날 추모비는 상당공원을 한 바퀴 돌아서 청주시 수동천주교회 마당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철거되었다가 2011년 4월 12일, 다시 수동천주교회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또다시 수동천주교회는 철거를 요청했다.

이런 사실이 전해지자 광주의 사회단체가 이 추모비를 광주에 모시자고 제안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표면적으로 수동천주교회는 교리와 어긋난, 자살한 대통령 추모비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외 다른 이유도 있기는 하겠지만 차라리 보수단체의 '노무현이 싫다.' '그의 친북정책은 국가에 해가 된다.'라는 직설적 비난이 훨씬 더 깨끗해 보인다. 당시 청주시장께서는 보수단체의 의견과 시민들의 여론을 들어 상당공원 설치를 불허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청주시와 충청북도가 관계된 사안일 뿐 아니라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만약 이 추모비가 광주로 내려가거나, 독지가(篤志家)가 희사한 땅에 설치된다면 청주와 충북의 시민들은 물론이고 한범덕, 이시종 두 분 단체장께서도 마음이 편안할 리는 없을 것이다. 특히 균형발전의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충북·청주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서야 지방자치의 핵심인 조정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보잘것없는 추모비에는 부엉바위에서 뛰어내린 한 인간의 고독한 영혼이 스며있다. 이념이나 종교를 떠나 무척 불쌍하고 아주 애절한 그저 보통 사람의 영혼이 돌에 새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동천주교회가 도그마(Dogma)라는 칼로, 어린양의 가련한 영혼을 내친 사실은 그 어떤 이유로도 다 설명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추모위원회 역시 성급하게 추모비 또는 추모석을 건립하고 설치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또한 추모비나 추모석 설치에 열정이 지나치며 감정을 앞세운다는 비판이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범선의 소설 <학마을 사람들>에는 국군이 된 친구가 인민군이 된 친구를 '학놀이'로 풀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을 읽고서 인민군을 풀어주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이데올로기보다 중요한 인간의 사랑과 자비(慈悲)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 추모석 설치는 순수하고 직설적인 보수단체의 자비(慈悲)에 호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것은 무엇이 옳고 그르냐는 진위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학놀이'와 같은 인정과 자비의 문제다. 보수적인 분들께서도 모두 아시겠거니와 한국문화에서는 사자(死者)에 대한 원한과 증오는 태워 버린다. 우리는 보수단체가 편협하고 또 무자비(無慈悲)한 분들의 조직은 아닌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존경하는 보수단체 여러분들께서는 이념과 조직을 떠나 바다 같은 마음으로 상당공원 또는 청남대 설치를 허락할 수 있어야 한다. 너그럽게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이자 위대한 정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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