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를 왜곡하지 말자

2011.12.07 17:12:54

김승환

단재문화예술제전 공동대표, 충북대 교수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다. 이렇게 선언한 단재 신채호는 폭력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폭력 - 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또한 선생은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절장절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한 함정이오,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로니, 우리 조선 민족은 그 참절장절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라고 천명했다.

이 비장한 문장은 1923년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혁명선언서>의 한 부분이다. 간단히 말해서,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지배는 그 자체가 불법이고 도단이므로 조선인들은 암살이나 폭동과 같은 방법으로 일제를 전복(顚覆)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비유하자면 강도를 잡기 위해서는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을 가진 선생은 폭력 자금을 마련하던 중 대만의 기륭우체국에서 체포되어 감옥을 전전하다가 병들어 옥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단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의 민족해방 방략이 과격하다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일화에 의하면 단재는 병들어 혼미한 와중에서도 보석을 주선한 자가 친일파라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절하고 1936년 2월 21일, 이국땅 여순(旅順)의 감방에서 옥사했다.

1880년 12월 8일 태어나 일생을 민족에 바친 단재 신채호 선생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민족감정에 근거하여 선생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가령 단재를 빌어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자고 민족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실로 위험할뿐더러 실현불가능한 선동이고 중국을 자극하여 예기치 못한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예전에 중국에 간 한국인들이 백두산 천지에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단재의 이름으로' 고구려 고토를 회복하자거나 집안(集安)의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단재의 이름으로' '우리 땅인 만주 벌판을 회복하자'라고 흥분한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단재는 김부식의 신라중심사관을 비판하면서 고구려중심사관을 입론한 바 있다. 그 가치나 의미는 크지만 선생이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자고 한 것은 아니다. 선생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주체와 민족의 자주를 의미하는 것이면서 일제 식민지배를 민족정신으로 극복하자는 것이었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지배와 피지배의 모순을 척결하자는 것이었지 패권적 민족주의가 아니었다.

식민지나 약소국의 민족주의는 절대 선(善)이지만 제국주나 강대국의 민족주의는 절대 악(惡)인 경우가 많다. 가령, 일본 민족주의 의 토대인 대화혼(大和魂)은 동아시아의 불행이었고, 미국이나 중국의 민족주의는 큰 문제를 야기했다. 이처럼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성한 국가가 민족주의를 주창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민족을 능멸하게 되고 패권과 결합하면 침략주의나 제국주의로 치닫는다. 따라서 21세기의 한국은 단재의 이름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한때 지배했던 영토를 회복하자고 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국가와 민족은 전쟁과 파멸의 길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단재의 정신은 민족의 주체였고, 동양의 평화였으며, 세상의 평등이었다. 단재는 오히려 자민족중심주의나 배타적민족주의를 경계했고, 모든 정부와 권력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그의 정신은 피압박 조선인의 민족주체였다. 한마디로 단재의 정신은 열린민족주의와 만국평화의 정신이었으며 진정한 인문주의의 회복이었다. 따라서 단재를 빙자하여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선전과 선동을 하는 것은 단재를 능욕하는 것이다. 다른 국가도 중요하고 다른 국가의 민족문화도 소중하다고 말하는 21세기의 열린민족주의가 진정한 단재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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